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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정계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의 7일 전언에 따르면 그는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이 집권하던 2000년 초반 민진당의 신진들을 대표해 총통부에 들어가 부비서장을 역임한 후 조용히 승승장구한 인물로만 알려져 있다. 상당히 비중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별로 튀지도 않았다.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야심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6일 실시된 민진당 주석 선거에서 일거에 주석에 당선됨으로써 상황은 달라지게 됐다. 지난해 11월 말 실시된 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사퇴한 당 주석에 선출된 이상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 더불어 차기 총통 선거를 노리는 잠룡으로 거론되는 운명도 감수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는 아직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선 소감 역시 “향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할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더구나 재선을 노리는 차이 총통과 절친한 사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경우 그가 적극적으로 대권을 넘보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집권당 주석이라는 무게감을 상기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설사 싫더라도 재집권을 위한 당 차원의 바람몰이 흥행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대권에 도전할 경우 그는 우선 차이 총통의 양해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에도 차이 총통을 비롯해 라이칭더(賴淸德·59) 행정원장, 쑤자취안(蘇嘉全·62) 입법원장(국회의장), 정원찬(鄭文燦·51) 타오위안(桃園) 시장 등의 잠룡들과 경쟁해야 한다. 본선에 오른다면 선거 재수(再修)에 나설 것이 확실한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58) 전 총통 후보도 꺽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난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로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대만 정계에서는 그가 형극의 길을 가기보다는 선거 관리형 주석을 자임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행정원장을 노릴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는 분석도 하고 있다. 이는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스타일과 맞는 것이기도 하다. 또 정치적 경륜을 더 쌓은 후 차차기(次次期)를 노리는 고도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
타이베이(臺北)에서 출생한 그는 국립 중싱(中興)대학 법상학원 법률학과를 졸업한 후 정계에 투신했다. 처음에는 타이베이 시의원으로 출발했지만 곧 입법위원에 당선돼 승승장구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총통부 부비서장, 민진당 비서장을 거쳐 2017년 9월에서 지난해 12월까지 행정원 비서장을 지냈다. 차이 총통의 ‘복심’일 수 밖에 없는 이력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