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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가 22일 발표한 사실은 이런 전망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당과 국가의 기율 및 법률을 위반해 쌍개(雙開·당적과 공직 박탈) 처분을 받게 된 것. 더구나 그는 재임중에 상당한 액수의 뇌물을 수수했을 뿐 아니라 권색(權色·권력과 성) 및 전색(錢色·금전과 성) 거래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 되면 기타 비리 혐의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단순히 몇 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상황이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이유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이른바 지청(知靑·지방으로 하방된 청년들) 세대의 막내 격에 해당하는 위안 전 회장은 당시의 동년배들처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최종 학력이 중앙당교지만 세탁된 것이라는 사실은 그의 주변에서는 다 알고 있다. 고작 19세의 나이로 마오타이 공장에 입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능력으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판공실 비서로 출발, 부주임을 거친 후 30대 중반에는 공장장보까지 역임한 것. 대망의 사장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고작 42세 때인 1998년이었다. 이어 2년 후인 2000년 회장 자리에 오른 다음 2011년에는 그룹으로 커진 회사의 회장에까지 취임했다. 한마디로 거칠 것이 없었다. 회사가 국영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가 오너나 다름 없었다. 그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회사를 글로벌 1위 주류 회사로 키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위상 탓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20년 가까운 그의 1인 독주는 결국 독이 든 성배가 되고 말았다. 그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비리를 자행하면서 스스로를 꼼짝없이 얽어맨 것이다. 구이저우성 정부가 그의 비리를 오래 전에 인지하고 정협으로 발령을 낸 다음 1년여 동안 비리를 샅샅이 뒤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안 전 회장이 마오타이에 기여한 공로만큼이나 쌓아 놓은 적폐 역시 대단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마오타이는 그의 후임인 리바오팡(李保芳·64) 회장이 1년 가까이 이끌고 있는데,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1조1000억 위안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