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17세에 공산당에 입당해 러시아에서 유학했다. 이어 전력 관련 관리로 일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톈안먼 사태를 지지해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가 총리로 일할 때에는 그 밑에서 부총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7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총리를 맡으면서 최고 지도부에 진입했다.
그는 1992년에 이뤄진 한국과의 수교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바 있다. 그 이전인 91년 5월에는 북한을 방문해 중국이 앞으로 “두 개의 한국 정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언급, 북한을 충격에 빠지게도 했다.
그는 원래 전형적인 기술 관료였다. 그러나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한 탓에 ‘톈안먼의 학살자’라는 이미지로 서방국가에 훨씬 더 친숙하다. 그렇게 불리게 된 전기는 89년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사망이었다.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자 양상쿤(楊尙昆) 전 국가 주석 등과 함께 강경 진압을 주장한 것. 결국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무력 진압을 허용한 6월 3일 밤 중국 군과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 이로 인해 최소 수백여 명, 최대 1만여 명의 인명피해를 낳았다.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했던 그는 1998년 자리를 후임인 주룽지(朱鎔基·91) 전 총리에게 물려줬다. 이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일하다가 2003년 3월 10일 제9기 전인대 공작보고를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했다.
gabobo@c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