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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책임자 리펑 전 中 총리 91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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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승인 : 2019. 07. 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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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관련 사과 없이, 총리만 10년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을 1989년 6월 4일 유혈 진압한 책임자인 리펑(李鵬) 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오후 11시 11분 별세했다. 향년 91세로 장지는 베이징의 바바오산(八寶)산 혁명열사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리펑
리펑 전 중국 총리./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중국 관영 언론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1928년 10월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인 리숴쉰(李碩勳)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주더(朱德) 등과 함께 난창(南昌) 봉기를 주도한 혁명 원로의 자제로 이른바 훙얼다이(紅二代)그룹의 초창기 일원으로 유명했다. 아버지가 국민당에 체포돼 처형당한 이후에는 저우언라이의 양자가 되면서 공식적으로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17세에 공산당에 입당해 러시아에서 유학했다. 이어 전력 관련 관리로 일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톈안먼 사태를 지지해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가 총리로 일할 때에는 그 밑에서 부총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7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총리를 맡으면서 최고 지도부에 진입했다.

그는 1992년에 이뤄진 한국과의 수교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바 있다. 그 이전인 91년 5월에는 북한을 방문해 중국이 앞으로 “두 개의 한국 정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언급, 북한을 충격에 빠지게도 했다.

그는 원래 전형적인 기술 관료였다. 그러나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한 탓에 ‘톈안먼의 학살자’라는 이미지로 서방국가에 훨씬 더 친숙하다. 그렇게 불리게 된 전기는 89년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사망이었다.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자 양상쿤(楊尙昆) 전 국가 주석 등과 함께 강경 진압을 주장한 것. 결국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무력 진압을 허용한 6월 3일 밤 중국 군과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 이로 인해 최소 수백여 명, 최대 1만여 명의 인명피해를 낳았다.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했던 그는 1998년 자리를 후임인 주룽지(朱鎔基·91) 전 총리에게 물려줬다. 이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일하다가 2003년 3월 10일 제9기 전인대 공작보고를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했다.
gabobo@cbs.co.kr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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