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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치명적 지병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이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 그의 사망이 단순한 소문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기자 출신 평론가인 쉬(徐) 모씨는 “그는 감옥에서 귀족 생활을 했다고 봐야 한다. 수형의 어려움으로 최후를 마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도 크게 없다. 지병이 있다는 얘기 역시 없었다”면서 사망설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한때 공산당의 8대 원로로 불린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로 이른바 훙얼다이(紅二代·혁명 원로의 자제) 그룹으로 분류된다. 태자당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문화대혁명 때는 우파분자로 낙인 찍힌 아버지로 인해 나름 고생도 했으나 이후에는 정 반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한 것이다. 금세기를 전후해서는 다롄(大連) 서기와 랴오닝(遼寧)성 성장을 역임한 후 국무원의 상무부장에까지 올랐다. 이어 충칭 서기로 영전한 후 대권을 노렸으나 낙마하고 말았다. 너무 야심을 드러내다 정적인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으로부터 칼을 맞았다는 소문이 지금도 파다하다.
일설에는 쿠데타를 모의하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설도 없지 않다.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61) 역시 그의 사건에 연루돼 함께 옥고를 치르고 있다. 아들 보과과(薄瓜瓜·32)는 캐나다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해도 좋다. 만약 진짜 사망했다면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