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 용추폭포.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쾌하다. 폭포 상단에는 유리 바닥으로 마감된 인도교가 설치됐다./ GNC21 제공
익숙하다고 느껴지던 것이 문득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의림지가 그렇다.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은 많지만 솔향 짙고 버드나무 신록 화사한 봄풍경이 예쁘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안다.
의림지는 충북 제천 모산동 용두산(871m) 남쪽 기슭에 있다. 삼한시대 인공 저수지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북 김제 벽골제, 경남 밀양 수산제 등과 함께 삼한시대 대표적인 농경문화 유적지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도 소개됐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 저수지이지만 여전히 수리시설로서 기능을 한다. 지금도 물을 가두고 의림지 서쪽 청전동 일대의 농경지 ‘의림지뜰’에 물을 댄다. 벽골제, 수산제는 각각 형태의 일부만 남았다. 의림지에서 의림지뜰을 관통해 시내까지 ‘삼한의초록길’이 이어지는데 제천 평야를 구경하려는 이들이 이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여행/ 의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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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제방의 솔숲. 가운데 보이는 정자가 영호정이다./ 김성환 기자
논에 물을 대는 저수지라고 예사롭게 볼 것은 아니다. 의림지는 풍경도 좋다. 국가명승(제20호)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자 경치도 수려하다고 국가가 인증한 셈이다. 수리시설이 ‘나라의 볼거리’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이다.
뭐가 볼만할까. 일단 제방에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가 멋지다. 우람한 몸체가 바람따라 흔들리듯 휘어진다. 물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는 자태가 우아하고 하늘로 곧게 뻗은 것에서는 씩씩한 기상이 느껴진다. ‘특별’ 관리를 받는 것도 있다. 수령 200~500년으로 추정되는 180여 그루의 소나무는 따로 번호가 매겨져 관리된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아우라가 크게 느껴지는데 이런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봄에는 오래된 솔숲이 풍기는 솔향이 더 알싸하게 느껴진다. 숨을 크게 들이켜면 몸이 개운해지고 정신도 맑아진다. 솔숲 말고 버드나무도 운치가 있다. 물위로 늘어진 가지마다 신록이 오르면 눈이 호강한다. 이런 풍경이 마음을 참 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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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를 에둘러 약 2km의 산책로가 잘 조성됐다./ GNC2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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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인공 저수지로 알려진 의림지는 지금도 물을 가두고 인근 들판에 물을 댄다./ GNC21 제공
의림지 복판에는 순주섬이 있다.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보이는 ‘뱀섬’처럼 생겼는데 이것도 볼거리다. 매끄러운 수면 위에 섬 하나 떠 있으니 풍경이 산다. 순주섬에는 순채(순나물)가 많이 자랐단다. 순채는 약으로도 손색이 없어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바쳐졌다. 의림지에서 약으로 쓰인 것은 또 있다. 붕어다. 조선시대에는 의림지에서 붕어도 많이 잡혔다. 건강에 도움이 돼 ‘약붕어’로 불리며 조정에 바쳐졌다. 순채와 붕어는 모두 자취를 감췄다. 그렇지만 오래된 저수지와 나무가 어우러진 천연한 풍경은 지금도 제천 사람들의 삶의 생채기를 치유하는 ‘약’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의림지는 단골 소풍 장소였고 고즈넉한 데이트코스였다. 가족 나들이의 추억이 담긴 유원지이기도 했다. 의림지를 에둘러 걷다보면 제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운동 삼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인근 주민들도 제법 많다.
의림지를 에둘러 약 2km의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길을 따라가면 영호정도 나오고 경호루도 만난다. 의림지를 바라보기 좋은 정자들이다. 영호정은 솔숲이 있는 제방 중간쯤에 있다. 조선시대에 처음 세워졌고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 1954년에 다시 지었다. 경호루는 솔숲 서쪽 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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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유리로 마감된 의림지 용추폭포 인도교/ GNC21 제공
경호루 뒤에 있는 용추폭포는 의림지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지난해 저수지에서 계곡으로 연결되는 배수로를 정비해 30m 높이로 만든 인공 폭포다. 폭포 위에는 투명 유리 바닥으로 마감한 인도교도 있다. 몇 걸음만 가면 폭포 위를 산책하는 아찔함을 경함한다. 스릴이 넘치니 물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 느껴진다. 용추폭포를 ‘용터지기’라고 부르는 주민들이 있다.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하지 못하고 터져 죽어 만들어진 폭포란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용의 울음소리 같아 ‘용폭포’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용추폭포 아래 용의 모양을 한 바위도 있었단다. 오랜 시간 풍화작용으로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의림지 동쪽에는 우륵정이라는 정자도 있다. 신라의 악성 우륵의 이름을 딴 정자다. 의림지의 축조연대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탓에 기원에 대한 여러 얘기가 전한다. 이 중 하나가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의림지의 시초라는 것이다. 우륵은 제자들과 함께 여기서 가야금을 뜯으며 만년을 보냈단다. 제천 사람들은 우륵정 앞의 널찍한 바위를 우륵대(제비바위)로, 뒤편 약수는 우륵샘으로 불렀단다. 우륵에 대한 기록이 제한적이어서 검증이 쉽지 않다. 이야기는 전설이 됐지만 우륵의 애를 태운 풍경은 여전히 서정적이다.
여행/ 의림지 비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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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림지 ‘비룡담’/ GNC21 제공
제2의림지도 있다. 의림지 북쪽으로 난 ‘한방치유숲길’이 솔밭공원을 지나 비룡담까지 이어진다. 비룡담이 제2의림지다. 의림지와 규모도 비슷하다. 중간에 나오는 솔밭공원도 운치가 있다. 의림지 솔숲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의림지는 야경도 아름답다. 가장자리를 에둘러 은은한 조명이 운치를 더한다. 용추폭포와 인도교에도 경관조명이 설치됐다. 밤에 보는 폭포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제천 하면 청풍호를 먼저 떠올린다. 특히 이맘때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 호반도로는 전국에서도 이름난 벚꽃 드라이브 명소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를 모아 조성한 청풍문화재단지도 볼거리다. 청풍호를 한눈에 내려다 보려는 이들은 케이블카(청풍호반케이블카)도 찾는다.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531m) 정상까지 2.3km 구간을 운행한다. 비봉산은 청풍호 중앙에 위치해 전망이 좋다. 사방이 호수여서 마치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섬에 오른 기분이다. 청풍호 중심의 여정에서는 의림지가 자주 빠진다. 봄에는 의림지 소나무, 버드나무도 청풍호 벚꽃 못지않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