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애널리스트 리포트' 신뢰하지 않아
스타트업·IT 등 애널리스트 모시기 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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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 소속인 애널리스트(연구원) A씨는 최근 판교에 위치한 유니콘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제약(바이오) 섹터 기업을 분석하던 A씨의 전문성을 높게 사 임원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해당 기업은 A씨에게 더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까지 보장하겠다며 투자와 재무관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이미 많은 애널리스트 선배들이 바이오테크 기업으로 넘어간 사례가 있는 만큼 결국 여의도를 떠났다.
예전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여의도를 떠나고 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테크기업들이 애널리스트를 수혈해 전문성을 채우고 있어서다. 정부의 지원과 미래 성장성을 높게 산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대규모 자본까지 확보한 테크기업은 이를 무기로 애널리스트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도 이직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주 52시간 노동을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테크 기업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끌리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앞으로도 테크 기업으로 향하는 애널리스트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들이 향하는 곳은 바이오, 핀테크, 벤처캐피탈(VC) 등 다양한다. 대표적으로 유전체 분석업체인 지니너스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자리를 옮긴 구완성 NH투자증권 전 연구원이 있다. 신재훈 한화투자증권 제약·바이오 담당 연구원도 올해 1월 진단키트 회사인 랩지노믹스 CFO로 이직했다.
이외에 대신증권 인터넷·게임 담당 이민아 연구원은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로 소속을 옮겼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제약·바이오 연구원은 알토스바이오로직스 CFO로 스카웃됐다. 배동근 크래프톤 CFO는 JP모건 홍콩 IB본부장 출신이다. 김종훈 컬리 CFO와 최찬석 야놀자 CIO(최고투자책임자)는 각각 모건스탠리와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사례도 많다. KB증권에서 매크로를 담당하던 김두언 연구원은 지난 5월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인 두물머리로 이직했다. 신한금융투자에서 8년간 애널리스트 업무를 담당했던 김규리 연구원은 지난 4월 토스증권으로 이직했다. 카카오페이증권도 흥국증권과 하나금융투자 등에서 인력을 수혈하고 있다.
이 같은 이탈 러시는 증권가에서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동학개미 운동과 함께 증시에 유입된 개인투자자들이 다양한 매체로부터 주식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애널리스트 리포트’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리서치센터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비용부서라는 시각이 확산하면서 애널리스트 지위가 한껏 낮아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달말 기준 미래에셋·NH투자·한국투자·KB·삼성·키움·대신증권, 하나·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의 전체 연구원 수는 550명이다. 이중 키움증권의 애널리스트 연구원 수는 35명이었다. NH투자(128명), 신한금융투자(77명), 삼성증권(71명), KB증권(58명), 하나금융투자(48명) 순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요새는 무슨 리포트를 작성해도 개인 투자자들의 비판을 받게 돼 있다”며 “현실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높은 노동 강도를 견디면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선 하루 업무를 치러내고 나면 회의감밖에 남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