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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자 닉슨과 마오쩌둥 회담 50주년...회담 전말과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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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2. 02. 2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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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마오쩌둥 회담 닉슨에 '황제' 말같이 통보
마오쩌둥 "우파 좋아한다"...닉슨 "우파, 좌파 말 실행"
닉슨 방중 후 베트남 공산화, 대만주둔 미군 철수
전문가 "경쟁자 중국 만든 전략적 대실책"
China US Nixon 50 Years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21일은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초대 국가주석과 회담한 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닉슨 대통령은 1972년 2월 21일 베이징(北京)에 도착, 마오 주석과의 회담을 원했지만 시기뿐 아니라 성사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갑자기 '마오가 닉슨을 보게 될 것이고, 그것도 즉시'라는 마치 '중국 황제'의 말 같은 통보가 왔다고 닉슨 대통령 보좌관들이 전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50년 전 방중 닉슨, 마오쩌둥 회담, 중국 황제 말 같은 통보 받아...미 국무장관에 악수 거절 당한 저우언라이 총리, 닉슨과 공항서 악수

닉슨 대통령은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해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의 영접을 받으면서 악수를 했다. 저우 총리는 닉슨 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을 향하는 차 안에서 1954년 존 포스터 덜레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 스위스 제네바 회의에서 자신의 악수 제안을 거부한 것을 언급하듯 "당신의 악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를 건너왔다"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덜레스 장관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1959년까지 국무장관을 지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한 미국 측 대표였다.

저우 총리는 그날 닉슨 대통령 일행에게 오찬과 환영 만찬을 가진 후 다시 영빈관으로 돌아와 '마오 주석이 닉슨 대통령을 당장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이에 닉슨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불렀고, 키신저 보좌관은 자신이 회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뛰어난 메모 능력을 가진 윈스턴 로드 NSC 고문(34)이 회담에 참석하도록 했다. 로드는 1971년 7월 키신저 보좌관의 비밀 방중에 동행했고,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주중 미국대사를 지냈다.

China US Nixon 50 Years
1972년 2월 28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 마오쩌둥 주석, 여성 참모 부축 받으며 닉슨과 악수...소박한 집 복도에 탁구대

닉슨 대통령은 마오 주석이 자신을 그렇게 빨리 만나길 원한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키신저 보좌관·로드 고문·경호원, 그리고 저우 총리는 검정 중국차를 타고 마오 주석의 거처로 향했다고 WP는 밝혔다.

영빈관에서 몇 마일 떨어진 마오 주석의 소박한 집에 도착한 닉슨 대통령 일행은 복도에 있는 탁구대를 발견했다. 이는 1971년 4월 10일 미국 대표팀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 대표팀과 경기를 한 '핑퐁 외교'를 상기시키는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오 주석은 여성 참모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닉슨 대통령과 악수를 했고, 반원형 면담 장소에는 중심에 앉은 닉슨 대통령 좌측에는 키신저 보좌관과 로드, 그리고 마오 주석의 고종사촌 손녀인 왕하이룽(王海容)이, 마오 주석 우측에는 탕원셩(唐聞生) 통역과 저우 총리가 각각 자리했다.

China US Nixon 50 Years
1972년 2월 26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 중 베이징(北京)에서 항저우(杭州)로 출발하면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함께 중국인민군의 사열을 받고 있다. 닉슨 대통령과 저우 총리 뒤를 미국 퍼스트레이디 팻 닉슨 여사와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걷고 있다.
◇ 마오쩌둥, 매우 긴 설명 저우언라이와 달리 짧게 말...정감 있고 자기비하적...베트남·대만·한반도, '논의하고 싶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

로드는 우아하지만 때로는 매우 긴 저우 총리의 설명에 익숙해져 있었던 키신저 보좌관과 자신이 짧은 문장을 말하는 마오 주석 스타일에 다소 놀랐다며 마오 주석의 말은 정감이 있었고 자기비하적이었으며 실질적인 질문을 회피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닉슨: 세계를 바꾼 주(週)'의 저자인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란은 마오 주석의 말은 불분명했고, 고향인 후난(湖南)성의 강한 억양이었다고 썼다. 이에 미국은 마오 주석이 뇌졸중을 겪었다고 봤다고 WP는 전했다.

그날 만남은 15분 예정돼 있었으나 1시간 넘게 이어졌고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대만·한반도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마오 주석은 논의하고 싶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라고 불렀고, "나는 철학적 질문에 관해 토론한다"고 말했다고 로드는 전했다.

닉슨은 마오의 글이 '나라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꿨다'고 했지만 그의 어록을 담은 '붉은 소책자'에 대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쓴 글에는 교훈이 없다"고 답했다.

'붉은 소책자'는 1950년대 4000만명이 죽은 대약진운동에 이은 대참사로 1960년대 백만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역사가들이 믿고 있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의 행동 지침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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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2월 23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체조 시범을 본 후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 마오쩌둥 "우파 좋아한다"...닉슨 "우파, 좌파 말 실행 가능"

아울러 마오는 닉슨이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며 공화당 소속 대통령인 것을 의식, "나는 우익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우파이고,
공화당이 우파라고 말한다"고 했고, 닉슨은 "미국에서는 적어도 지금은 우파가 좌파가 말하고 있는 것을 실행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닉슨은 또 "몇년 동안 중국에 대한 나의 입장은 주석이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이었다"면서도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세계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인식"이라고 화답했다.

마오의 말은 내용이 부족했지만 전반적인 어조는 다정했고, 이에 닉슨은 기뻐했다고 로드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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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2월 25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팻 여사 등이 중국 베이징(北京) 자금성(紫禁城)을 둘러보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 닉슨-마오쩌둥 만남, 베트남전서 미군 철수·소련 공동 대응·대만서 미군 철수 등 미·중 이해관계 산물

닉슨과 마오의 만남은 베트남 전쟁의 국면 전환을 위해 북베트남에 영향력을 가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미국과 1969년 소련과의 국경분쟁을 겪은 중국의 공통 이해관계 속에서 이뤄졌다.

이와 관련, WP는 미·중이 중국인들이 북극곰이라고 불렀던 소련을 두려워했다며 중국군과 소련군은 1969년 우수리강 국경에서 끔찍한 소규모 충돌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은 베트남에서의 철군에 중국의 도움을 원했고, 중국은 대만주둔 미군 철수와 세계 무대에서의 승인을 간절히 원했다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은 미·중이 '가려진 주역'인 소련의 위협에 관해 논의했고, 가장 큰 초점은 대만이었다며 2003년 공개된 회담 전문에 따르면 닉슨은 마오와 한차례, 저우 총리와 5회, 고위 참모들이 참석한 확대 회담 2회 등을 가졌다고 밝혔다.

닉슨은 소련의 위협과 관련, '문제는 중국이 미국과 소련의 공격 위험 중 어느 쪽에 대항하는가라는 것'이라고 했고, 마오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공격 문제는 비교적 작은 것이라서 논의의 중심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China US Nixon 50 Years
1972년 2월 24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팻 여사 등이 중국 베이징(北京) 인근의 만리장성을 걷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 1973년 파리 평화협정 2년 후 베트남 공산화...1979년 미·중 국교 정상화 후 대만주둔 미군 철수

닉슨은 또한 '대만주둔 미군 3분의 2는 동남아시아 정세가 해결되면 철수시키고, 나머지 3분의 1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됨에 따라 감축될 것'이라고 했고, 저우 총리는 '대만 문제는 논의가 오히려 간단하다'며 '우리는 20년 이상 기다렸기 때문에 매우 솔직하게 말하지만 몇년 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닉슨이 언급한 '동남아시아 정세' 해결은 베트남 전쟁 종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남·북 베트남, 그리고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는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 그해 미국 측 대표자인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과 레둑토 북베트남 정치국원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2년 후인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하면서 협정은 치욕적인 역사가 됐다.

닉슨의 마지막 방중 날인 1972년 7월 28일 상하이(上海)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은 대만 문제와 관련, '미국은 중국이 단 하나로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인식하고 이의를 제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고, 민주당 소속 지미 카터 미 행정부 때인 1979년 1월 1일 미·중이 국교를 정상화한 후 대만주둔 미군은 철수했다.

키신저 폼페이오
2019년 7월 29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 미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진행된 국무부 창설 230주년 기념행사에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워싱턴 D.C.=하만주 특파원
◇ 닉슨 "세상을 바꾼 한주"...역사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보좌관 "표현할 형용사 부족"...WP "냉전 해빙 초래"

닉슨은 자신의 방중이 '세상을 바꾼 한주'라고 평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적인 시각이 많아졌다.

닉슨의 '공산(red) 중국' 방문에 대해 맥밀란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earthshaking)'이라고 했고, 로드는 "이 드라마를 설명할 때 수식어들(adjectives)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WP는 냉전에서 대규모 해빙을 초래했다며 닉슨 방중 당시 사설에서 "닉슨이 달에 간다고 밝혔더라도 전 세계 독자가 이보다 크게 놀라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는 거의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mind blowing) 정도였다"고 전했다.

◇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키신저 앞에서 "역대 미 행정부 중국 관여 실패"...시카고대 석좌교수 "미, 경쟁자 중국 만든 전략적 대실책"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미국 내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여러 차례 키신저 전 장관 바로 앞에서 미·중 외교 관계 수립 이후 역대 미 행정부의 중국 관여 정책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닛케이에 "냉전시대 미국이 중국에 관여해 소련에 대항하는 관계를 맺은 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냉전 종식 후에도 어리석게도 중국 경제성장을 돕는 관여 정책을 추구해 동등한 경쟁자를 만드는 전략적 대실책을 범했다고 지적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중국은 당연히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했다"며 미국·유럽·일본·대만 등이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대해질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언젠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며 생각, 지정학적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는데 결국 중국이 미국에 도전, 신냉전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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