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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하이샤다오바오(海峽導報)에 따르면 라이 부총통은 지난해 11월의 지방선거 패배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주석직에서 사퇴함에 따라 전날 치러진 보궐선거에 단독 출마, 무난히 당선됐다. 득표율이 무려 99.65%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그가 마냥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투표율이 고작 17.5%에 불과했던 탓이다. 한마디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차기 총통 후보로서 입지를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베이징의 대만인들이 "그는 이번 선거에서 잃은 것이 얻은 것보다 더 많다고 해야 한다. 앞으로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투표율 부진이 그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것이라고 한결같이 분석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는 18일 취임식을 가질 라이 신임 주석은 열렬한 대만독립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중국 외교부와 언론이 그의 승리에 대해 일제히 거부반응을 보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한다. 중국의 강한 압박을 초래할 그의 이런 정치적 성향은 내년 총통 선거에서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대만인들 상당수가 지난 수년여 지속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긴장에 지친 나머지 국민당 내 온건파 후보가 정권을 잡기를 바라는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고 해야 한다. 그동안 순탄하기만 했던 그의 정치적 운명은 이제 정말 넘기 쉽지 않은 고비에 직면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라이 신임 주석은 타이베이시 인근 신베이(新北) 출신으로 외모에서 풍기는 귀공자 인상과는 달리 금수저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광부였던 아버지가 그가 두 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가정을 꾸려왔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어릴 때부터 될성 부른 나무였다고 할 수 있었다. 장성해서는 대만대학과 청궁(成功)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미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기적도 일궈냈다. 정치권에는 의사로 일하던 1994년에 전격 뛰어들었다. 정치에서도 그는 성공 신화만 썼다. 입법원 위원과 타이난(臺南) 시장을 거쳐 행정원장(총리)를 지내는 등 승승장구한 것이다. 2020년 총통 선거에서는 차이 총통의 러닝메이트가 돼 승리를 일궈내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