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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단은 22일 오후 2시 조사성과와 출토유물을 시민과 공유하는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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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1990년을 시작으로 총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들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산성의 문지(동문지, 남문지)와 옹성, 치성을 포함하여 건물지와 집수정 등이 조사됐는데 그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조사과정에서 백제시대 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었으나 이와 관련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삼국(백제)시대와 관련된 유적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한 이번 발굴조사 지역은 미륵산성 정상부(장군봉) 아래 평탄지를 대상으로 기존 지표조사에서 백제시대 지명인 '金馬渚城(금마저성)'명문기와가 수습된 곳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토루는 반원형으로 확인된 둘레는 77.3m 정도이며, 토루 너비는 9.8m, 잔존높이 3.1m이다. 성토방법은 성질이 다른 흙을 사용해 교차로 쌓고 중간에 토류석을 시설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경사성토를 한 모습, 성토층에서 목탄(숯), 목주(나무기둥)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토루를 견고히 하기 위한 축조기술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발굴단은 평가하고 있다.
석축 저수조는 현재까지 최소 4차례에 걸쳐 수개축이 이루어진 후 최종적으로 원형의 석축우물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1차는 원형으로 추정되며 직경 750㎝ 정도 규모로 높이는 58㎝, 4단 정도가 잔존하며, 2차는 말각방형으로 남북길이는 350㎝, 높이는 63㎝로 4단 정도 남아있다.
또 3차는 남북방향으로 긴 장방형으로 남북길이 780㎝, 동서길이 645㎝ 규모로, 높이 146㎝, 7단 정도의 석축이 잔존하며, 4차는 방형으로 동서너비 560㎝로 1단만 남아있다. 석축 저수조의 내부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과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대호편, 선문계/격자문계 평기와편 등이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토루는 기존 조사(전영래, 2003, '전북고대산성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삼국시대 테머리식 산성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시 관계자는 "문화재청과 함께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익산 미륵산성의 진정성 있는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조사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역사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적의 보존·관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