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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출신 김영춘 시인, 세번째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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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박윤근 기자

승인 : 2023. 10. 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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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 '허용의 서정'이 따뜻하게 빛난다" 평
김영춘-horz
김영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애지)' 이미지와 김영춘시인./애지
1988년 '실천문학' 복간호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민중적 서정의 세계를 표현해 온 김영춘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애지)'를 출간했다.

'애지'는 "시집에는 사물과 사람에 깃든 섭리와 그 은근한 온기를 살피는 시선이 웅숭깊게 펼쳐진다. 이전 시편들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고통 받는 삶을 그렸었다면 이번 시편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의 내면에 눈길이 머물며 서로 다른 삶의 요소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통찰하는 '허용의 서정'이 따뜻하게 빛난다"고 이번 시집을 평했다.

오랫동안 교육 운동에 몸담아 왔던 정이 많고 깊은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김영춘 시인은 달걀 껍질에 붙어 있는 깃털을 보며 "어미 닭을 떠나게 하고 마는 일들의 견고한 바짓가랑이를"('떠나는 일에 대하여') 잠시 흔들어보기도 하면서 "이 나라의 슬픔으로는/아비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에/어린 것이 어미 곁에 홀로 서 있는 정도는 되어야/인간사의 다정이 제대로 피어나는 것이"('다정한 것에 대하여')냐고 묻거나, 사과를 쥐는 힘에 사과의 어린 살이 멍이 들까봐 노심초사 하며 사과를 딴다는 농부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손가락 끝에 매달린'), 이 시대의 시들어가고 소멸하는 것들의 가치에 대하여, 이 시대의 다정에 대하여,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하여 짐짓 덤덤한 질문을 던진다.

복효근 시인은 "생(生)의 가을이 연주하는 다정 변주곡"이라는 발문을 통해 "시인의 시선이 닿는 모든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곡진하다. 다정하다. 시인은 생의 순간순간에 마주하는 다정의 얼굴을 구체적인 국면을 통해 그려 보여주고 있어 실감으로 다가온다.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오래 다정한 눈빛을 건네며 다양한 빛깔로 그 다정을 노래한다. 쓸쓸함과 외로움 혹은 아픔까지도 다정으로 수렴한다."며 "다정의 배후에 자리한 슬픔과 애틋함을 보지 않고는 이 다정의 곡진함을 읽을 수 없다. 다정의 부드러운 표정, 그 안을 받치고 있는 견고한 사상을 '사랑'이라고 읽는다"고 말한다.

김사인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작위나 허세는 흔적도 없다. 방심한 듯한 시의 갈피마다 스민 순정 앞에서 읽는 이들은 하릴없이 무장을 해제 당한다."고 썼다.

김영춘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출간 이후 10여 년 만에 내는 이번 시집의 출간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등단 무렵의 나는 교육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던 교사였습니다. 학교 밖으로는 지역의 역량과 기틀을 세워 나가고 싶어 하던 활동가였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시대는 시에 몰두하는 일마저도 스스로 부끄러운, 모든 것이 부족하고 절실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쓰는 일은 항상 나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여유를 얻은 요즘에 와서야 문학청년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하루 종일 머릿속에 시 생각이 가득합니다. 이번 시집은 내가 온전히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묶어내는 것이라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고요. 그동안 쉼 없이 생각해 왔던 나다운 시를 한두 권쯤 더 묶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쏠쏠한 희망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술집에 앉아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통해 손을 잡아가다가
눈앞의 손목이 마치 어디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 같아서

인간의 마음이 들고 나는 주택가 골목 같아서
늘 누군가의 손목을 잡고 싶어 하던
내 손목을 바라보고 있다

- '손목' 전문


사과를 따는 손가락의 힘이
사과를 눌러 멍들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좋은 농사꾼은
사과를 딸 때 삯꾼을 쓰지 못하고
가족끼리만 따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는데
껍질과 그 안의 달콤한 속살까지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런 말을 전해 들으면서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 알을 스치며 손가락의 끝을 느끼는
농사짓는 사람의 정성도 정성이려니와
봄여름 가을볕 비바람 아래서
날마다 스스로를 두껍게 하며 살아온 껍질이
끝내는 제 안의 여린 속살을 지킬 수 없었다니
마음이 아려왔다
이런 까닭에
제 손가락의 끝을 걱정하는 어떤 농부의 마음은
사과 알의 곁에 오래 머물게 되었을 테니
나무에서 사과 한 알이 맺히고 떨어지는
이 세상이란
얼마나 턱없이 눈물겨운 곳이었는지

- '손가락 끝에 매달린' 전문


산봉우리에
형제봉이니 자매봉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놓고
살던 사람들이 있다
행여 사이가 좋지 못할까봐
형제자매들까지 데려다 놓고는
오래 오래 그렇게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전주의 동학혁명기념관 앞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늙어가면서
전봉준 김개남 이런 사람들의 눈빛을 지켜보고 있는데
무너지는 몸을 겨우 이기는 그 곁으로
열대여섯 살쯤 됐을까
싱그러운 어린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요즘 식으로 유전자를 따라가 봤더니
늙은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한다
아비도 없이 어찌 아이만 남았을까
우금치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두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사람처럼 어미와 아비를 떠올리다가
형제봉이나 자매봉을 불러보던 시간들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가 않아서
몸이 슬슬 떨려오기도 했다

이 나라의 슬픔으로는
아비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에
어린 것이 어미 곁에 홀로 서 있는 정도는 되어야
인간사의 다정이 제대로 피어나는 것인가
꼭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인가
동학혁명기념관 앞에도 봄이 왔으므로
할아버지와 손자라면 더 어울릴 법한 두 은행나무가
어미와 자식으로

나란히 잎을 피운다

둘이서도 잘 피운다

다정하기가 그지없다

슬픔도 그 뒤를 따라가고 싶어서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정한 것에 대하여' 전문


경마장 근처를 지나다가 늙어가는 말을 보았다
마침 겨울이었는데
벌판을 달리고 콧김을 내뿜는 시간을 뒤로 한 채
제 스스로의 마구간 안에 홀로 서 있었다
천천히 몇 걸음씩 오가며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눈빛은 순해지고
털빛은 추운 날을 받아들이기에 알맞은
허옇고 몽글몽글하고 푸석푸석한 그 무엇이었는데
그 모양이 괜찮았고
오래 보고 있노라니 점차 아름다워지기까지 했다
가까이 가서 몸을 기대고 싶었다
그제서야 나도 서 있는 짐승이었다
그제서야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싸락눈이 서걱이는 그런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바깥을 서성이는 발자국들이
나를 따라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서성였네' 전문


시간이 많아진 날에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말랑말랑한 얼굴쯤은 이제 그만두고
눈과 코와 이마를 둘러싼 뼈를
꾹꾹 눌러 보았다

들어가고 나온 자리를 따라
살 없는 뼈만으로도
내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쯤
평생을 아껴온 살보다
오늘에서야 만난 뼈가 더 정다워지기도 하고
살 붙이지 않은
뼈로 이루어진 얼굴이야말로
제대로 된 내 얼굴이리라 믿어 보기도 하였다

시간이 많아진 어느 날에서야
나는 드디어 살을 거쳐 뼈에 이르렀는데

외롭다는 흔적도 없이 뼈에 머물며
뼈와 함께 깊이 살 수 있게 될 것인지를
오래 생각하였다

-뼈에 머물며' 전문

김사인시인은 추천사에서 "그는 사람 손을 꼬옥 잡기를 좋아한다. 숨은 다정이 속 깊이 있고야 가능한 일, '오래 오래 눈물겨웠던' 바가 있는 이에게야 가능한 일. 그런 까닭에 나는 김영춘 그 사람을 좋아한다. 그를 닮았으니 시인들 다르랴. 작위나 허세는 흔적도 없다. 방심한 듯한 시의 갈피마다 스민 순정 앞에서 읽는 이들은 하릴없이 무장을 해제 당한다. 아무려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내 생각에는). 무엇보다 그는 사람 손을 간곡하게 잡을 줄 아는 사람! 다정의 한 형식을 터득한 사람. 다정의 한 길을 스스로 이룬 사람. 소문에 그가 술과 결별하겠다고 한다. '쫑쫑쫑 썬 아욱국' 끓여주던 이는 반색하시겠으나, 막 풋정이 들어가는 나는 어찌 할꼬. 눌과 더불어 술어리광을 나눌꼬. 가을은 또 오는 모양인데."라고 썼다.

김영춘시인은 시인의 말을 빌어 "버릴 수 없으니 품고 가게 되었다. 버릴 수 없었으니 별것도 아닌 것처럼 덤덤하게 적어 갔으면 한다. 별것이 아닌 것처럼 살았으면 한다. 돋아나는 햇살만큼이나 다채로웠던 감정의 무늬와 사소한 욕망들. 그리고 언뜻 언뜻 스쳐가던 경이로운 순간들."이라고 자신의 시를 전했다.

한편, 1957년생인 김영춘시인은 고창 해리의 눈이 많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88년 '실천문학' 복간호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나비의 사상'이 있다.
박윤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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