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재] “논쟁하는 인간”만이 역사적 발전을 이끈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20201000031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5. 02. 02. 17:28

외계인에게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26회>
송재윤1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20세기 초중반의 '수레바퀴 논쟁'

기원전 3500~32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릇 빚는 돌림판이 수레바퀴로 개발되어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레바퀴는 시차를 두고서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인도 북서부의 인더스강 유역 하라파 문명에서도 기원전 3000년경부터 통나무를 잘라 만든 바퀴가 출현했다. 기원전 3000~2500년경이 되면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도 굴대에 연결된 수레바퀴가 사용되었다. 이상하게도 최고의 문명이 번창했던 이집트에선 수레바퀴의 사용 시기가 기원전 2000년경으로 꽤 뒤처진다.

이집트엔 나일강이라는 천연의 편리한 물길이 있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수레바퀴를 안 쓰고도 강물을 이용해서 대규모 석재와 곡물을 뗏목이나 배로 실어 나를 수가 있었다면 수레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물론 메소포타미아에도 큰 강이 둘이 있지만,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 사이에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일찍부터 육로가 중시되었다. 바깥에서 아무리 기발한 문명의 이기가 들어왔다 해도 현지 환경에 적합하지 않으면 퍼져나가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레바퀴가 유라시아 육로를 타고서 동아시아로 전파되기까지는 천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고대 중국에선 상(尙, 기원전 대략 1600~1046) 문명의 유적지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전차(戰車)에는 굴대에 부착된 정교한 수레바퀴가 보인다. 수레바퀴의 확산은 그렇게 시차를 두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덕분에 적어도 수레바퀴의 사용에 대해선 독자 진화론보단 전파론이 더 설득력 있다.

◇학술 논쟁인가, 정치 대결인가?

20세기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수레바퀴 논쟁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하자 빙긋이 웃으며 외계인 미도가 되물었다.

"20세기 학자들이 수레바퀴의 발명과 전파 과정에 관해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대 문명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에 대한 순수한 과학적 논쟁인가요? 수레바퀴 논쟁은 결국 지구인 특유의 호승심이 빚어낸 학인들 사이의 말싸움은 아닌지요?"

중국 허난성 신정(新鄭)시 기원전 575년 전차
기원전 575년 중국 허난성 신정(新鄭)시에서 1923년에 발굴된 전차
미도의 말대로 학술 논쟁도 정치적 의제(political agenda)와 무관할 수 없다. 전파론이 강조되면 여러 지역 문명 사이의 불균등 발전론이 강화되고, 결국 서유럽 중심의 식민주의 논리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하여 20세기 초중반 인류학계에는 전파론에 맞서 독자 진화론의 캠프가 형성되었다. 이 논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위정척사파와 개화론자의 대립으로 가게 된다. 그쯤 되면 역사학과는 무관한 정치적 이전투구에 빠져들고 만다. 외계인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인들이 벌이는 숱한 학술적 논쟁들이 실은 부질없는 말싸움으로 여겨질 수 있다.

◇'호모 디스푸탄스(Homo Disputans)', 논쟁하는 인간

문명사를 둘러싼 학술 논쟁도 많은 경우 신념 갈등과 정치 대립의 양상을 보인다. 학자라 해도 시공의 한계에 갇힌 지구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건조한 논문의 행간에도 정치색이 스며든다. 입으론 무전제(無前提)의 객관성을 외치지만, 많은 학인은 신념을 입증하기 위해 그럴싸한 논리를 끼워 맞추기도 한다.

학문적 결론이 사회적 통념에 반하거나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난다고 여겨질 때, 과연 몇 명이나 학문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발표할 수 있을까?

비단 사회과학이나 인문학뿐만이 아니다. 가장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자연과학 역시도 편견과 통념을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2020년 11월 최고의 권위지 '네이처(Nature)'는 '정치와 과학'의 관계에 관한 세 편의 토론을 다룬 바 있다. 과학은 정치와 무관한 순수하고 객관적인 학문이라지만, 정치적 영향에서 절대로 자유롭지 못했음은 과학사가 증명한다.

과학계의 연구가 흔히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 불리는 학계의 정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쏠린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거론되었다. 실험실의 과학자들은 학계의 패러다임(paradigm) 속에 갇혀서 정설의 타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압력에 시달린다. 과학자들은 실험 과정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변칙이나 이례(異例, anomaly)들에 대해선 크게 깊은 관심을 기울일 시간도, 정력도 없다.

연구비를 타서 진행된 실험이 성공하려면 예기치 않았던 이상한 현상을 곁눈질하기보단 원하는 결과를 향해 매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사의 대가 쿤(Thomas Kuhn, 1922~1996)이 1962년 그의 기념비적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분석한 과학적 연구의 일반적 진행 방향이다. 물론 그는 이 책에서 과학적 연구 과정에서 변칙과 이례가 자꾸 발생하여 수북하게 축적되면 결국 어느 순간엔가 기존의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과학적 혁명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과학자 집단이 얼마나 학계의 일반론, 곧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슬픈 존재들인지도 잘 보여준다.

◇논쟁은 인식론적 심화 과정

그렇기에 정치적 의도가 뒤섞여 혼탁하게 오염돼 보일지라도 지구인의 학술 논쟁을 부질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지구인의 학문적 논쟁이 결국 모두 부질없는 진영 대립이며 감정 충돌은 아니냐는 외계인 미도의 질문에 대해서 지구인으로서 이렇게 답변하려 한다.

"토론을 멈춘 지구인들은 아집의 관(棺)에 갇혀 독단의 묘지에 묻힐 수밖에 없지요. 언어적 존재로서의 지구인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인식 능력을 배양할 수 있지요. 언어로 소통하기에 고립된 개개인은 인류 공동의 정신적 유산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요. 학자들의 논쟁이야말로 가장 첨예하게 전개되는 활발하고도 정교한 인식 활동이라 할 수 있죠! 물론 논쟁에 말려든 지구인들은 흔히 정치적 대립과 감정적 충돌에 말려들지만, 지구인들은 좌충우돌의 논쟁을 통해서만 보편적 진리에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멈추고 논쟁을 회피한다면 진실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인도 동부 오디샤주 수리야 사원의 13세기 바퀴 조각
13세기 완공된 인도 동부 오디샤주 수리야 사원의 바퀴 조각
문명사는 그야말로 끊임없는 논쟁의 과정이었다. 이 험한 자연계에서 종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지구인들은 다른 동물과는 아예 비교를 불허하는 예민한 언어 중추를 발달시켜 왔다. 지구인들은 언어를 통해 소통하면서 고립된 개인으로선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인에게 언어적 소통은 생존과 번영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개개인의 체험과 생각은 다 다를 수밖에 없기에 소통은 필연적으로 논쟁을 일으킨다. 지구인은 저마다 처한 위치가 다르고, 보고 느끼는 바가 다르고, 바라고 믿는 것 또한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개별적 인간은 각자의 눈·코·귀·입을 통해서 외부의 자극을 내면적 감각으로 수용하게 되고, 그렇게 받아들인 경험 세계를 지식의 바탕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지구인은 누구나 일단 주관적 체험의 세계에 갇혀 있는데,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와 남이 공동의 체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지구인들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인지적 합의에 도달할 수가 있다. 결국 모든 객관성은 다수 인간이 언어적 소통을 통해 도달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다. 인간은 토론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정확한 인식 위에서만 역사적 발전이 가능해진다.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