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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은 1994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인해 발생한 1차 북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 증강 계획을 수정하고, 기존의 디젤 잠수함 확보 계획을 핵 추진 잠수함으로 변경했다. 이를 근거로 2004년 해군 내 핵 추진 잠수함 사업단을 구성하여 도입을 추진했지만, 1년여 동안 검토한 결과 기술력 부족과 핵연료 확보 문제 등을 극복하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었다. 이후 선박용 원자로 응용 연구에만 집중해왔으나,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핵 추진 잠수함 건조 기술의 핵심 요소인 잠수함 독자 설계 및 건조 기술과 원자로 제작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다만 핵연료의 안정적인 수급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북한의 SLBM 위협이 날로 커지자 우리 국민의 75.2%(2021년 통일연구원 조사)가 핵 추진 잠수함 건조에 찬성하고 있다.
2024년 8월 5일 TV조선은 군 당국과 방산 기업들이 핵 추진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 개발을 추진 중이며, 이 원자로는 우라늄 농축도 19.75%의 저농축 연료를 사용해 IAEA(국제원자력기구)사찰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음에도 정부는 확인해 주지 않았다. 이는 해당 사업이 '대외비 사업' 즉, '비닉(秘匿) 사업'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닉 사업으로 지정된 경우, 추진 내용과 현황 등 모든 사항이 비밀에 부쳐진다. 비닉 사업 지정 및 해제 권한은 국방부 장관에게 있으며, 지정 시 극소수만 사업 추진 과정을 알 수 있다.
비닉 사업의 장점은 극도의 보안 유지가 가능해 주변국 및 이해 당사국의 간섭을 차단할 수 있으며, 언론에 설명할 필요가 없어 가짜 뉴스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점도 크다. 우선, 비밀리에 추진됨에 따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더라도 개발 기관 및 기업 간 협력이 어렵고, 이로 인해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보안 문제로 인해 해외 기업에 최종 사용자 증명을 제공할 수 없어, 국내 개발이 어려운 특정 장비의 해외 구매가 불가능해진다. 전 세계 핵 추진 잠수함 개발 역사를 보면, 국가 기술력을 총결집하기 위해 모두 국책 사업으로 선정하고 공개적으로 추진하여 성공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인도는 해군에 맡겨 은밀히 추진하다가 개발 기관 간 협력 부재 및 불화로 실패했고, 결국 러시아 핵 잠수함을 임대하여 운용 노하우 터득 후 32년 만에 성공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비닉 사업으로 추진한 배경은 이해할 수 있으나, 북한이 이미 전 세계에 비핵화 포기를 공언한 지금, 우리가 비닉 사업으로 추진할 이유는 없다. 또 농축도 20% 미만의 우라늄을 군함의 추진체로 사용할 경우, 이는 국제규정, 조약, 협정 등을 위반하지 않기에 숨길 필요가 없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4~50배 뒤지는 북한은 핵무기 고도화와 핵잠수함 건조를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핵무기도 아닌 핵 추진 잠수함 건조마저 비밀리에 추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굴종적인 자세다. 국방부 장관은 이미 막대한 국민들의 세금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의 성공을 위해 비닉 사업을 해제하고,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북한의 위협을 억제할 강력한 전략 자산이 필요하며, 이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추진될 때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