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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풍전등화 조국 위해 민간외교 헌신 박동선... 못다한 이야기, 전달 못한 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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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5. 04. 24. 09:10

'코리아 게이트' 주역 박동선 회장
주한미군 철수 저지·한국군 현대화 군사 원조 위해 민간 외교
진실 알리지 못하고 별세
스틴븐스 전 미국대사가 전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이야기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아시아투데이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취재만 해놓고 기사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우크라이나 및 가자지구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무역전쟁 등 긴급 현안을 먼저 챙기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이 경우 취재원에게 빚을 졌다는 부담감이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별세한 박동선 회장의 경우, 안타까움을 넘어 죄스러움마저 느낀다.

박 회장은 1970년대 중반 '코리아게이트'의 중심 인물이다. '국제 로비스트'라는 단편적 소개가 보일 뿐 그 인생 궤적에 대한 진지한 조명이 없다. 박 회장과 2011년 6월 인터뷰를 계기로 교류하게 된 덕분에 당시 이런저런 내막을 접할 수 있었다.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막고 국군 현대화를 위해 군사원조를 획득하려는 민간외교에 관여한 것이라고 박 회장은 회고했다. 일반적 의미의 로비 활동과 결이 다르다는 뜻이다.
박동선 회장
박동선 파킹턴 회장이 2011년 6월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무실에서 아시아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이병화 기자
박 회장은 미국 출판사가 '코리아게이트' 관련 책 출간에 100만달러를 제시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정치 입문 초기 비서 역할을 할 때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상과 매우 가깝게 지내는 등 일본 정계인사들, 일본 최대 출판사 코단사(講談社) 대표 등과도 친분이 깊어 원하면 일본어 출판도 얼마든 가능했으나 이 역시 시도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현역에서 활동 중인 이해 당사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기자의 심층 인터뷰에는 응할 의향이 있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2015년 인도 뉴델리 특파원으로 떠나기 직전 박 회장과 저녁을 함께하며 '죽기 전에 미국 등 전 세계 인맥을 소개해 주고 싶다'는 덕담도 들었다.

뉴델리에서 귀국해 1년 정도 지낸 후 중국 베이징(北京) 특파원을 거쳐 미국 워싱턴 D.C.에 부임하는 등 경황없이 지내는 가운데 박 회장과의 약속은 미뤄졌다. 그러다가 부고를 접했다. "몇 년 더 살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싶다"던 고인의 음성을 떠올리며 큰 슬픔에 잠겼다. 거처가 고인이 만든 '조지타운클럽'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라 애통함, 아쉬움이 더했다.

스티븐스 이사장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한 호텔에서 진행된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주한미군전우회(KDVA) 회원 초청 음악회에서 연설하고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나 친한파 외교관 등 미국 인사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들에 대해 독자들께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고 훗날 주한 미국대사까지 지낸 '심은경' 캐슬린 스티븐스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이 14일 워싱턴 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주한미군전우회(KDVA) 회원 초청 음악회 때 들려준 이야기 또한 늦게나마 전하고 싶은 감동이다.

스티븐스 이사장에 따르면 수년 전 자전거를 타고 버지니아주 시골 마을을 지나던 중 북위 38도선 표지판을 보고 찾아간 인근 작은 학교에 한국전쟁 참전 동문 기념비가 나직이 서 있었다. 미국 전역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중 하나였다.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사실로 그녀는 다수의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진출해 있다는 점, 재미 한인 사회가 성공적인 공동체라는 점을 꼽았다. 또 "애국가를 들으면 항상 울컥하는데, 특히 오늘처럼 현악 연주로 애국가를 들으면 더 그렇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강리아
9세 바이올린 연주자 강리아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한 호텔에서 진행된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주한미군전우회(KDVA) 회원 초청 음악회에서 연주하고 있다./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전날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연주에 이어 이 자리에서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을 들려준 아홉 살의 바이올리니스트 강리아는 "참전용사들이 얼마나 용감했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알게 됐다"며 "저도 여러분처럼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 한국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여러분들 희생을 잊지 않겠다."

이 소박한 말엔 한국인 모두의 심정이 요약돼 있다. 새삼 두 나라의 운명적 인연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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