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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 거쳐 다시 마이크...FSL·CL 누비는 이성훈 캐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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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파 게임담당 기자

승인 : 2025. 05. 01. 18:15

"심심할때 같이 노는 친구 같은 캐스터 되고 싶어"

 

이성훈 캐스터. /이윤파 기자
“어릴 때 심심하면 항상 e스포츠를 봤어요. 그냥 친구랑 노는 기분이랄까. 저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캐스터가 되고 싶어요.”

이성훈 캐스터는 어릴 적 심심할 때마다 e스포츠를 틀어놓곤 했다. 마치 친구와 노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어서였고, 그때의 감정은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 있다. 그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이성훈의 중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함'에 방점이 찍혀 있다. 딱딱한 분석보다는 옆자리 친구처럼 이야기하듯 풀어가는 스타일이 그의 방식이다.

현재 그는 넥슨의 FC온라인 슈퍼 챔피언스 리그(FSL)와 라이엇 게임즈의 LCK 챌린저스 리그(CL)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스포츠 중계로 시작한 그의 여정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다.

◆ 성우 준비생에서 물류센터를 거쳐 다시 마이크 앞에 서기까지

이성훈 캐스터. /이윤파 기자
이성훈 캐스터 역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던 시절이 있었다.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활발한 성격 덕분에 아나운서나 개그맨 같은 직업도 한때 진지하게 생각했다. 성우 시험에 도전하며 극단 활동을 통해 연기도 배워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방향을 틀어 회계 전공을 살려 취업 준비에 나서게 됐다.

"회사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러다 친구가 캐스터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해서 알게 됐어요."

아나운서 학원에 등록한 뒤 두 달쯤 지나 지역 스포츠 현장에서 첫 중계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탄하진 않았다. 방송 일이 많지도 않았고 지원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버틸 수 있었다"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웃음). 그땐 뭐든 다 재밌었어요. 지방 가는 것도 좋았고, 잡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죠."

스포티비에서 K리그 중계를 하던 그는 2018년 말 스포티비 게임즈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e스포츠 중계를 시작했다. 그런데 방송국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갑자기 일이 끊겼다.

"그래서 공장이나 물류센터 같은 데서 일했죠. 냉동 창고에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할 만했어요. 시간도 금방 갔고요."

◆ "선배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죠"
이성훈 캐스터. /이윤파 기자

다시 중계석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혼자의 힘만은 아니었다. 성승헌, 정인호, 김대겸, 정준, 온상민, 채민준, 허준, 김동준 등 함께했던 이름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정인호 해설과의 에피소드였다. 지스타 행사에서 정 해설이 본인의 페이를 줄이면서까지 자신을 데려가 줬던 일은, 그 이후로 일이 술술 풀렸다고 느낄 만큼 중요한 기억이었다.

"정인호 해설은 진짜 정이 많고 사람을 잘 챙겨요. 아마 그때부터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해요."

스포티비 게임즈 입사 당시 면접관이기도 했던 성승헌 캐스터에 대해서는 지금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 그는 "사람 진짜 따뜻하게 잘 챙겨주고, 인간적으로 너무 멋있는 분"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벌써 중계 경력 10년차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계속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옆에서 함께 마이크를 잡아온 선배들에게서 여전히 배울 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용준 캐스터의 에너지 넘치는 열정, 성승헌 캐스터의 센스, 그리고 박상현 캐스터의 탁월한 소통 능력까지. 이성훈 캐스터는 선배들의 강점을 눈여겨보며 자신의 스타일 안에 조금씩 녹여가고 있다.

"선배들 덕분에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죠. 저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어요. 느려도 괜찮아요. 오래 가고 싶거든요."

◆ 중계는 '선수가 주인공'…기억에 남아야 할 건 내 목소리가 아니라 그들
FSL에서 활약 중인 이성훈 캐스터. /FC온라인 e스포츠
이성훈 캐스터는 중계를 준비할 때면 항상 같은 고민을 한다. '이 선수의 매력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살릴 수 있을까?'.

"팬들이 제 중계를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선수가 주인공이어야 하잖아요. 그들의 플레이를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중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선수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팬들이 중계를 통해 캐스터보다 선수의 플레이를 더 생생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올해는 리브랜딩된 FSL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 도입, 개인전 체제 전환, 상금 규모 확대 등으로 FSL은 새 옷을 입었고, 팬들의 반응도 뜨겁다.

"요즘 유저들이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선수 스쿼드 보고 팀 짜보는 팬들도 많고요."

새로운 얼굴들도 리그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그는 원더08이나 우타처럼 신선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확실히 바람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JM 같은 베테랑 선수들까지 잘 어우러지면 훨씬 재밌는 그림이 나올 거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LCK CL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CL 출신들이 1군에서 활약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팬들의 관심도 더 커졌다고 한다. 특히 시우, 디아블 같은 선수들을 보며 "진짜 잘하더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 "좋아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행복이다. /이성훈 인스타그램
이성훈은 캐스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소통'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중계진끼리의 호흡은 기본이고, 연출진, 팬, 게임 제작사와의 소통까지 모두가 팀워크라고 했다.

"처음부터 잘될 수는 없어요. 그냥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 선 하나가 그어져요. 저도 그랬고요."

지금 목표를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이미 다 이뤘다"는 답을 내놨다.

"1등이 되는 게 목표였던 적은 없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은 사람들이랑 함께할 수 있었으면 했고, 지금이 딱 그런 시기라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캐스터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이성훈은 잠시 웃으며 말했다.

"저도 예전엔 심심하면 e스포츠 틀었거든요. 그냥 친구처럼 곁에 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지금은 제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해요. 그걸로 충분하죠."
이윤파 게임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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