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부까지 비교적 훌륭…이후 허술한 서사로 완성도 끌어내려
주인공 '연희 역 류현경의 온몸 던진 호연 인상적…차기작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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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개봉하는 '주차금지'는 제목이 암시하듯 '생활 밀착 스릴러'를 표방한다. 좁은 골목길 안 주차와 관련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황을 통해 도시인의 불안과 광기, 개인 정보 유출 및 직장 내 성희롱 등과 같은 사회 문제를 꽤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혼 후 계약직으로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연희'(류현경)는 자꾸 치근덕대는 부서 상사(김장원)가 불편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은근히 기대하며 꾹 참아야 하므로 마음 한 구석이 무겁기만 하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왕복 3시간에 이르는 출퇴근 교통난과 집 앞 자신의 주차 공간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도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이웃 여자 탓에 스트레스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늘 그렇듯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어느 날, 역시나 주차 공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웃 여자의 차량을 보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연희'는 차를 빼 달라고 이웃 여자에게 전화를 거는데 낯선 남자 '호준'(김뢰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심 속 흔하디 흔한 차량끼리의 작은 다툼에 가정에서 소외된 남성이 뇌관처럼 끼어들고, 이로 인한 연쇄 반응이 파국을 불러일으킨다는 설정은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폴링 다운'부터 러셀 크로우 주연의 '언힌지드'까지 그동안 여러 스릴러에서 다뤄져 왔다. '주차금지'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중반부까지의 완성도는 보기 드물게 수준급이다. 주인공이 일터와 집 주변에서 겪는 심리적 악전고투를 과장하지 않고 차곡차곡 소개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이 과정에 양념처럼 얹어지는 부서 상사의 쿨한 듯 시도때도 없이 '들이대는' 모습은 묘한 잔재미와 긴장감마저 제공한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수작으로 가는 길목에서 힘 없이 주저앉는 대부분의 스릴러들처럼 후반부로 갈수록 이전까지 잘 다져놨던 서스펜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름 근사하게 출발했던 악당은 개연성을 잃어버린 행보로 헛웃음을 자아낸다. 서사의 정교한 구축과 인물들의 당위성 있는 동선 제시에 막판까지 공들였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스럽게도 류현경을 비롯한 주요 출연진의 안정감 넘치는 연기가 이 같은 단점을 어느 정도는 메운다. 특히 류현경의 실감 나는 호연은 인상적이다. '돌싱'과 '경단녀'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직장 내 상황부터 낯선 이로부터 생명을 위협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흔들림없이 홀로 극을 이끌어간다. 무르익은 연기력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좀 더 그럴싸한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