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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개선의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 주거기본법을 제정해 주거권 보장과 주거복지정책 수립 의무화를 명문화한 게 2015년이다. 최소한의 주거생활의 보장을 담은 세계인권선언(1948년)이나 적절한 주택과 서비스를 기본 인권이라고 명시한 해비타트 밴쿠버 선언(1977)과 비교하면 턱없이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임대주택 제도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일 정도로 노력해왔으나 우리 사회 주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고 서민 계층의 고통 강도는 깊어진 게 사실이다. 주거비 상승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이래 5년 동안 주거비 연간 상승률을 보면 실감이 난다. 연평균 상승률이 무려 4.9%를 상회, 물가의 2배 수준을 넘어서고 최고 9.2%(2023년)에 달한 경우까지 달했을 정도다. 또 저소득층을 비롯해 1~2인 가구, 월세가구, 39세 이하와 60세 이상 가구의 주거비 부담 수준(슈바베 지수)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어 힘들고 어려운 계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주거 위협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국가 최대의 해결과제인 저출산이 왜 오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기도 하다.
특히 근래 들어 주거 문제가 양과 가격에 그치지 않고 양극화와 에너지, 공중위생, 개인 환경, 재해와 이상기후, 전쟁 등으로 사회경제적, 다차원적, 복합적 양상으로 변화함에 따라 이에 대응한 주거권 확보가 새롭게 화두로 부상하는 추세다. 예컨대 지속 가능(Sustainable)함을 키워드로 한 공급과 질의 지속 여부와 적정 주택(Affordable)을 중심으로 한 부담 가능성 외에 대응을 핵심으로 한 적응 가능성(Adaptable)이 국제적으로 주거의 새로운 해결과제가 되고 있다. 이미 네덜란드를 비롯해 덴마크,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이를 선도적으로 실현하고 있으며 미국 등도 중장기 계획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이는 공급량만을 중시해온 수치 제어 방식의 주택정책을 포기하고 주거의 질, 품격 문제를 우선으로 하는 주거정책으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한국주거복지포럼이 2030년을 목표로 한 "주거복지 갈 길을 묻다"를 주제로 개최한 대토론회에서 차기 정부의 주거정책 목표와 방향을 제시한 게 큰 반향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주거전문가들은 토론회에서 주거환경변화와 국민 주거권 확보 차원에서 국민 주거비 부담을 먼저 완화하고 시장안정과 수요맞춤형 주택정책 도입, 주거생활의 품격 향상 등의 3대 과제를 제시했다. 또 국민 주거비 부담완화를 세부 정책 검토사항으로 부담 가능한 주택공급과 내 집 마련과 임차 가구를 위한 금융 지원 개편, 제도권 외 금융 사각지대 지원을 위한 사회적 금융 도입 적극화 등을 요구했다. 주택시장 안정과 수요맞춤형 주택공급을 위한 실천 정책으로 연간 50만 가구의 주택공급을 비롯해 수도권 지역 맞춤형 공급체계 마련, 중산층 임대주택 균형적 공급, 고령자 서비스 맞춤형 임대 공급, 청년과 신혼부부의 임대, 분양 혼합형 주택공급, 지역 주도형 주택정책, 시장 부합형 정책 세트 등이 제시됐다. 이외에도 주거생활 품격 향상을 위해서는 가정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돌봄 지원 생태계 구축(AIP,AIC)을 비롯해 주택 품질 표시제도 전면 도입 및 성능등급 표시제 보완, 적정 주거기준 도입, 다양한 주거유형과 문화향상 등을 꼽았다. 이는 새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주거복지를 위해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실천 로드맵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주거복지에 대한 인식 제고와 대대적 조직 개편 및 예산 증액, 거버넌스 체계 보완, 이를 담당하는 공기업 및 지자체의 실천부서 내실화 등이 필수다.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국민에게 꼭 필요한 일임을 모두가 자각할 때만이 가능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장용동 한국주거복지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