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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격동의 시대: 현장에서 길을 찾다] 트럼프 관세시대 한미 FTA와 WTO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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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29. 17:50

조성대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대상으로 한 국경 비상사태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다양한 품목에 대해 1962년 무역확장법 232조 상의 안보 위협에 따른 관세, 무역적자를 비상사태로 본 57개국(EU 27개 회원국을 하나로 봄) 대상 상호관세와 여타 국가에 대한 보편관세 등을 부과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언급되었던 보편관세, 상호관세, 대중국 고율관세와 취임 직후 언급했던 품목별 관세가 넉 달 만에 대부분 도입되었거나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불과 100일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미국이 관세조치를 도입할 근거와 수단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WTO와 FTA 양허세율을 초과하는 대규모 관세조치 도입은 해당 국제조약상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조약별 분쟁해결제도를 활용한 복수의 무역분쟁이 발생한다면, 실망한 미국이 조약에서 탈퇴하거나 종료 수순을 밟을 가능성까지 상정할 수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수립된 국제무역질서가 파국을 맞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짐을 의미한다.

미국이 선택한 수단은 이른바 '안보 예외'다. GATT 21조는 전쟁 또는 국제관계상 다른 비상사태(emergency) 시 자국의 필수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미 FTA 23.2조도 동일하게 규정한다. 미국이 국경문제와 무역적자를 비상사태로 보고 국제비상경제수권법(IEEPA)을 통해 대외 거래를 제한한 것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철강,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고 구리,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해 관련 조사를 진행하는 것도 안보 예외를 활용하기 위한 계산이라 볼 수 있다.

안보 예외는 트럼프 1기에도 활용된 바 있는데, 당시 중국, 노르웨이, 스위스, 튀르키예 등이 WTO를 통한 협의를 요청해 분쟁해결 패널 절차가 진행되기도 했다. 당시 패널은 미국의 조치가 GATT 21조의 예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으나, 사법적 판단을 받기 위한 상소절차가 무력화된 상태여서 이에 대한 명확한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위와 같은 미국 관세조치의 법적 배경과 쟁점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의 관세조치를 옹호하거나 '안보 예외'에 대한 시비를 가리고자 함이 아니다. 연쇄적인 관세조치가 도입되자 세간에 불거진 한미 FTA나 WTO 무용론에 대해 몇 가지 측면에서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함이다.

첫째, 관세양허는 그 자체로 자유로운 국경 간 거래와 이를 위한 조약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나, WTO와 FTA는 관세양허 외에도 많은 이해관계를 다루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는 상품시장을 개방하며 대부분의 관세를 없애고, 원산지 기준이라고 하는 수혜 조건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는 상품 시장접근 외에도 상품무역에 필요한 다양한 규범과 서비스, 투자, 전자상거래, 경쟁, 정부조달, 지재권, 노동, 환경 관련 조항을 담고 있다. 양국 간 복잡한 경제 및 산업 공급망 협력 관계와 투자거래를 고려할 때 한미 FTA 무용론을 언급하며 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둘째, 분쟁해결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로 이 중요한 무역규범이 쓸모없다는 것은 국가 간 분쟁해결제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WTO가 사법심인 상소제도를 갖추고 무역분쟁 해결에 기여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간 분쟁은 국제조약 또는 국제기구에서 정해놓은 분쟁해결 방식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주권국가간의 분쟁은 당사국 간의 협상을 통해 외교적으로도 해결될 수 있다. 분쟁해결 수단은 그 결과에 따른 실익을 예상하고 평가하여 선택해야 하며,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것에만 급급하다가는 전체 협정이나 대외관계의 손상이라는 손해로 귀결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모든 문제를 국제규범과 그 제도 내에서 해결하지 못한다 하여, 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마치 대기나 물의 가치를 당연시하고 낮게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이 자동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한미 FTA를 체결하고 있는 우리는 EU, 일본과 같은 경쟁국이 부담해야 할 MFN 세율 2.5%를 추가 부담하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WTO가 없다면 국가들은 관세를 올리는 데 어떠한 부담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이는 대공황초기 미국의 보호주의 관세법에 자극받아 많은 나라들이 거리낌 없이 보복에 나선 결과 대공황 심화로 이어진 100년 전 사례를 반복하는 격이다.

관세조치에 따른 직접적 피해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로 우리를 포함한 글로벌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 문제가 우리로부터 연원하는 것은 아니나, 자유무역 질서 아래 최적화된 대외거래의 비중이 큰 우리 경제를 비껴갈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가 새 균형을 찾기 위한 변화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이익창출의 형식보다는 본질에 집중해야 하며, 유연하고 기민한 대응이야말로 긴요한 덕목이라 할 것이다. 관세조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나 불요불급한 형식적 무용론보다는 현실을 직시한 협상과 실익 확보로 우리 기업과 경제가 전환기를 버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

<필자 소개>
조성대 실장은 …
고려대 국제법 박사로 한국무역협회 신성장연구실 연구위원을 거쳐 동 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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