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고려증권 창단 멤버
|
30일 배구계에 따르면 장 교수는 이날 오전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 교수는 오랫동안 지병인 위암과 싸워왔다. 장 전 교수는 작년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 교수는 1980년대 한국 남자배구 전성기의 중심에 선 최고의 스타였다. 1978년 인창고 2학년 때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4강 진출에 앞장섰다. 이어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사냥을 이끌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따냈다.
1983년 실업배구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참가해 현대자동차써비스와 함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1984년 슈퍼리그에서는 호쾌한 공격으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그는 남자배구 처음으로 스카이 서브를 선보였고, 활처럼 휘어지는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타점 높은 공격으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역 은퇴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경기대에서 체육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또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역 시절부터 술과 담대를 입에도 대지 않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배구인들에게 정평이 나 있던 장 교수였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6월 1일 오전 5시 30분 발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