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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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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게임의 핵심 스토리가 담긴 스포일러가 있다.
게임 기자를 시작하고 즐겼던 게임 중에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게임이, 생각하지도 못 했던 감정을 안겨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인디게임에 진심인 스토브가 최근 한글화한 'SAEKO: 거대한 그녀와의 기묘한 동거'를 체험해봤다.
이 게임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소녀 '사에코'와 엄지손가락 크기로 줄어들어버린 소인들의 생활을 그린 게임이다. 게임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어떤 게임인지 궁금해졌다. 도저히 텍스트만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처음 보는 컨셉의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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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해봤자 얼마나 잔혹하다고' 이 생각이 바뀌는 데 10분 걸렸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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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시작하면 '이 게임은 간접적인 잔혹 묘사 및 성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할 때는 충분히 주의하시고, 자주 휴식을 취합시시오'라는 문구가 나온다. 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이런 경고가 나오는 것일까.
신비한 소녀 사에코는 소인들이 사는 서랍의 주인이다. 사에코는 서랍의 관리자로 주인공 '린'을 임명했다. 린은 서랍 안에서 소인들을 잘 관리하고 사에코가 준 임무를 수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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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아아아악.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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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납치 당한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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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임무는 바로 사에코가 매일 밤 먹을 소인을 길러내는 것이다. 사에코는 멀쩡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충격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 사에코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축소시킨 뒤 납치한다. 그리고 작아진 사람을 먹으며 쾌락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을 닮아 호감이었는데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게임이 진행되는 사에코의 서랍 안은 생지옥이다. '관리자'라는 거창한 직함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사형 집행인이나 다름없다. 매일 밤 사에코에게 먹힐 한 명을 직접 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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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과 작별은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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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사형 제도에 대한 토론을 자주 했다. 사형 반대 측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사형 집행인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는데, 그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디지털 데이터를 관리 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힘들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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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거의 학교 일진.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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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고 재미없게 말 하면 바로 쥐어짜인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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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코의 먹이를 준비한 뒤에는, 사에코와 대화를 하며 장단을 맞춰줘야 했다. 맞장구도 적절한 타이밍에 쳐주고, 말을 들어줘야 할 때는 계속 들어주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야 했다. 평소에 눈치가 없고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실증난 사에코에게 목숨이 뺏기니 주의하자.
낮에는 사람을 죽이고, 밤에는 식인종과 대화해야한다. 만약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고 하면, 단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극한의 환경이다.
단순한 비주얼 노벨 어드벤처 게임이 이 정도의 몰입감을 줘서 놀라웠다. 진격의 거인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무력하고 압도적인 느낌 그 이상이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정신이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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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런 상황을 반복하다보면 정신이 붕괴된다. /인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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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진행하며 얼마나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이 게임의 핵심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가슴이 아프고 정신이 무너질 순간도 많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희망이 있다.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내느냐, 내지 못 하고 현실에 순응하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성이 크게 달라진다. 극한 환경에 놓인 인간 심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게임을 추천한다. 거대한 존재에 대한 성적 취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즐길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시험하는 듯한 심리 묘사는 일품이었다. 거친 픽셀 아트와 우울한 BGM까지 더해져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거대한 그녀와의 기묘한 동거가 남긴 여운은 마음 한켠에 오래 머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