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의견 수렴해 절차적 정당성 갖췄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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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과 동시에 상고심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30명까지 늘리는 '대법관 증원법'과 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재판단하도록 하는 '재판소원법'을 잇달아 발의했다. 법원 내부에선 여당 주도로 사법개혁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자 "다소 급진적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현직 판사는 "대법관 증원 부분은 상고심이나 사법 제도 전반에 영향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3심 상고 사건이 많으니 법관을 늘리자는 식으로 단순 접근하기 보다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상고 제도 전반에 관해 국민에게 도움되는 방향성을 논의하고 숙고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정안들이 국가의 백년지대계이기도 하고, 다양하게 검토하거나 우려할 사안이 많다. 사법제도 전반에 걸친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신중한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내부에서도 사법개혁과 관련한 법안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한 대법원 관계자는 "파기환송심 이후 대법원 내부에서 정권의 기류를 살피면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측면이 없진 않다"며 "법원 차원에서 추진 중인 사안이나 계획들도 지금으로선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대법관 증원은 현실적으로 엄청난 보조 인력과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며 "대법관이 늘어나면 재판연구관도 증원돼야 하는데 사무실 마련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법조계 역시 사법제도 개혁에 충분한 논의와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 장악 의도를 가진 일방적인 개혁 추진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며 "올바른 방향이 맞는지, 다른 의견이 있는지 수렴해 절차적 정당성을 제대로 갖췄어야 한다. 설령 올바른 방향이라 한들 많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대 여당의 뒷받침을 받는 대통령이 무소불의로 권한을 행사하면 사법부가 독자적 힘으로 막아낼 수가 없다"며 "오죽하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공론장을 만드자는 이야기를 했겠냐"고 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대법관 증원의 경우 사법부 독립을 붕괴시키는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경우도 바이든 정부에서 미 연방 대법원 판도를 본인 사람들로 채우려는 급진적인 시도를 했으나 결국 강력 반대에 부딪혀서 실현하지 못했다"며 "재판소원 도입 자체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이 역시도 성공하려면 여러 전제 조건을 갖춰야 한다. 사건 수가 폭증할 거고, 지금 조직과 인력으로는 그걸 감당할 수 가 없다. 결국 이 같은 선제적 조치 없는 급진적 도입·추진은 헌법재판소 기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