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다시 도마위
양형기준 정비 등 제도 보완 '주목'
경영계 "형사 처벌 강화뿐 아니라
정부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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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업재해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1급 실장급)를 차관급 조직으로 격상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산재 예방과 안전 정책, 산업재해 보상 등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현장 안전관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8일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숨진 노동자 수는 2022년 623명, 2023년 597명, 2024년 589명으로 소폭 감소에 그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매년 600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맨홀 질식사고 역시 삼중 하청 구조 속에서 안전장비 없이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법이 있어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다시 확인됐다. 노동당국은 발주처와의 도급 관계를 포함해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부족은 법 적용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말까지 선고된 법 위반 판결은 총 31건에 그쳤고, 이 가운데 실형 선고는 4건뿐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머물렀다.
법조계는 실형 선고가 드문 배경으로 양형기준의 부재와 낮은 처벌 수위를 지적한다. 김도윤 법무법인 율샘 변호사는 "기업이 안전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 건 처벌 수위가 낮고 경각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명확히 묻는 방향으로 제도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익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도 "양형 기준이 불분명하다 보니 법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현장에서도 법 적용이 유예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예방 정책과 연계된 집행 체계가 정비돼야 실효성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산업재해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 마련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국정기획위는 이를 통해 경영책임자 처벌을 강화하고, 일선 법원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법 적용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은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입법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고용노동부 내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정무직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정권 교체와 잇따른 산업재해, 대통령의 특단 대책 주문이 맞물리며 해당 법안에도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정안은 산재 예방과 보상 정책을 전담하는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위상을 높여 정책 추진력과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제도 보완에 나선 가운데 경영계는 우려와 함께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이번 안타까운 사고로 희생자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사업주와 근로자, 그리고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초점이 예방이 아닌 처벌에만 쏠려 있는 점은 안타깝다"며 "영세한 사업장은 안전관리 예산이 부족해 법 준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으면 기업 존속이 흔들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처벌 강화뿐 아니라 이에 걸맞은 정부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