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카드 위조·이주 정책 변화에 대응
인권단체 "법·제도적 역량 충분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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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매체 더선데일리에 따르면 사이푸딘 나수티온 말레이시아 내무부 장관은 UNHCR이 난민 정보를 정부에 제때 공유하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되면서 난민 및 망명신청자 데이터베이스(DPP) 구축을 추진하게 됐다고 8일 발표했다.
이 등록 시스템은 국가안보위원회(NSC) 지시에 따라 내무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전국 70여개 출입국관리소 등 기존 이민 관련 인프라를 활용해 생체정보 등록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시행이 본격화되면 난민과 망명신청자는 가까운 출입국관리소를 직접 방문해 등록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내무부는 이미 이민 구금소에 수용 중인 약 3만7000명의 난민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생체정보 등록을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사이푸딘 장관은 "최근 UNHCR 가짜 난민카드 사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과 호주 등 난민 수용국의 정책 변화로 말레이시아 역시 독자적인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우려를 표했다. 말레이시아 비정부기구 노스사우스 이니셔티브의 아드리안 페레이라 사무총장은 "말레이시아는 난민 보호를 위한 법적 틀이나 제도적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며 DPP 시스템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난민정보추적시스템(TRIS)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해당 시스템은 불투명하게 운영됐고 일부 난민을 대상으로 착취가 발생했다는 의혹도 있다"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 내무부는 2022년 UNHCR 등록 난민 및 망명신청자 18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TRIS 등록을 의무화했으나 인권단체와 국제사회는 법적 보호 없이 수집된 난민 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해 왔다.
페레이라 사무총장은 "난민 자격을 심사하고 보호하는 일은 전문 인력, 통역, 국제 기준에 대한 고도의 역량이 요구되는 복합적 절차"라며 "UNHCR의 역할을 대신하려 하기보다는 국내에 난민 보호법 제정,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가입 등 법적 보호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1월 말 기준 UNHCR에 등록된 말레이시아 난민 및 망명신청자는 약 19만2420명이다.
이 중 남성은 65%, 여성은 35% 그리고 18세 미만자는 약 5만4340명에 이른다. 이들은 주로 미얀마 등에서 발생한 전쟁과 박해를 피해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난민이다.
말레이시아는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나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로, 국제법상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은 적용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국내법이 없다. 난민과 망명신청자는 불법 이민자로 분류돼 체포, 구금, 추방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말레이시아는 국제조약이 자국 내에서 자동으로 발효되지 않는 이원주의 체계를 따르고 있다. 국제조약의 국내 적용을 위해서는 별도 입법이 필요하지만 관련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난민들은 여전히 법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올해 1월에도 말레이시아 당국은 랑카위 인근 해역에서 로힝야 난민 196명을 체포했다.
전문가들은 난민 등록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대책에 관해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 아니라 법적 보호 체계와 병행해 운영될 때만 난민 등록 시스템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