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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재난보다 더 두려운 건 무감각한 공직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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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김남형 기자

승인 : 2025. 07. 24. 18:00

가평 괴물 폭우 '실종자 수색'
7월 22일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에서 소방관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100120김남형 증명사진
김남형 사회부 기자
"국민이 죽어가는 엄혹한 현장에서 음주 가무를 즐기는 공직자들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 발언은 단순한 질책이 아니다.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를 향한 공개 경고장이자, 재난을 마주한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목소리다.

지난 20일 백경현 구리시장은 강원 홍천에서 열린 야유회에 참석했다. 구리 지역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지고 시청은 비상근무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백 시장은 같은 날 오전 "폭우 피해를 재난상황실에 신고해달라"는 안내 문자를 시민들에게 발송했다. 하지만 시민들 머릿속에 남은 것은 마이크를 들고 춤추는 시장과 술병이 놓인 테이블, '하계 야유회' 현수막. 그날의 영상은 공직사회의 민낯이었다.

공직자의 무책임한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재난 대응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다.

17일 세종시에서는 40대 남성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지만, 23시간이 지나서야 재난 당국이 인지했다.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인 세종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세종시의 인명피해 보고서에는 '없음'이라는 문구만 적혔다. 결국 대통령실이 나서 "재난지휘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질책했다.

두 사례 모두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보고 누락이나 복무 해태로 치부하기엔 반복된 위기 대응 실패가 공직사회의 구조적 문제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현장에서 많은 공무원이 밤을 새워 대응하고 수해 복구에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고위직의 안일한 태도와 허술한 시스템이 모든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한 공무원도 많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재난 대응을 전담하는 공무원에 월 8만원의 특수직무수당을 신설하고, 비상근무수당도 12만원으로 인상했다. 현장의 고생을 인정한 조치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책임 있는 자세'다.

문제는 반복된다.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경북 수해, 그리고 이번 수해까지. 매번 사후에 드러나는 것은 '현장에 없었던 책임자',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 '지켜지지 않은 매뉴얼'이다. 반성은 말뿐이었고, 행동은 없었다.국민이 기대하는 건 더 많은 보고서가 아니라, 위기 앞에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재난은 돌발 상황이지만, 대비하는 태도는 평소에 드러난다. 위기 대응은 단순한 매뉴얼 실행이 아니라 국민 생명을 최우선에 두는 책임감에서 출발한다. 지금 공직사회엔 이런 태도를 갖춘 리더십이 절실하다.

재난은 언제든 다시 닥친다. 중요한 건 그 순간, 공직자가 어디에 있는가다. 국민이 물에 잠기고 구조를 기다릴 때 책임자는 술자리에서 웃고 있었다면 그 자체로 시스템은 무너진 것이다.

재난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무감각이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매뉴얼이 아니라, 헌신과 통제, 책임과 각성이다. 공직이 '자리'가 아닌 '역할'이라는 상식을 회복할 때만이, 다음 재난에서 국민을 지킬 수 있다.
김남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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