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높은 캐릭터 맡아 '물 만난 고기'처럼 편안하게 연기해 서브 플롯 약하고 극적 긴강잠 떨어져 결말부 갈수록 맥 빠져 연출자가 처음부터 의도한 결과…선한 미덕 폄훼하기 힘들어
악마가 이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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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개봉하는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백수 청년 '길구'(안보현·오른쪽)는 아랫층에 이사 온 '선지'(윤아)의 기괴한 언행에 기겁한다./제공=CJ ENM
소심하고 지나치게 착한 성격 탓에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길구'(안보현)는 자의 반 타의 반 퇴사 후 인형 뽑기로 소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보는 기괴한 비주얼의 한 여성이 몸싸움을 걸어와 화들짝 놀란 '길구'는 다음 날 그 여성이 아랫층에 이사 온 새 이웃이자 단지 내 빵집 파티셰인 '선지'(윤아)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낮에 본 '선지'는 전날 밤과 달리 청순한 자태와 얌전한 언행의 소유자로, '길구'는 이 같은 사실에 호기심을 느끼고 주위를 맴돌던 중 '선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에게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알고 보니 '선지'는 새벽이 되면 활개를 치는 악마에 빙의됐다는 것이다.
13일 개봉하는 '악마가 이사왔다'는 한마디로 윤아의, 윤아를 위한, 윤아에 의한 영화다. 윤아의 밝고 따뜻하며 긍정적인 기존의 이미지와 소탈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영화의 여러 단점들을 상당 부분 가려버릴 만큼 일단 호감부터 자아낸다.
2017년 '공조'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스크린 속 비중을 늘려온 윤아는 이번 작품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음껏 활개친다. '1인 2역' 이상이자 사실상 다중 인격에 가까울 정도로 꽤 난이도 높은 캐릭터를 맡았지만, 보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수준에 맞춰 영리하게 연기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뛰어난 배역 해석 능력과 더불어 정상의 걸그룹이 아니라면 결코 경험하기 어려웠을 수천 번의 무대 위 퍼포먼스를 통해 익힌 수위 조절 본능 덕분으로 풀이된다.
악마가 이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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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오른쪽)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낮밤이 다른 여주인공 '선지' 역을 맡아 '길구' 역의 안보현과 쫄깃한 연기 케미를 합작한다./제공=CJ ENM
그러나 영화속 윤아의 절대적 활약을 반대쪽에서 바라보면, 윤아 말고는 높이 쳐줄만한 구석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주변 인물들의 활약이 다소 미미해 이야기가 단조로워지고 중반 이후부터는 그 마저도 방향을 잃기 일쑤다. 또 확실한 빌런이 없다 보니 긴장감이 좀처럼 형성되지 않아 결말부로 갈수록 맥이 빠진다.
이 같은 결과는 연출자의 더 분명해진 성향에서 처음부터 의도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각본까지 겸한 이상근 감독은 데뷔작이자 전작인 '엑시트'에 이어 이번에도 사건의 극적인 해결이 아닌, 캐릭터의 해원(解寃)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6년전 10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던 '엑시트'에서 선악의 대립을 묘사하거나 재난을 일으킨 장본인을 벌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내적 관계를 진전시키는 과정에 주로 집중했던 접근 방식이 심화된 대목이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착한데다 줄거리마저 자극적이지 않아 밋밋하다는 이유로 이 작품이 지닌 미덕을 마냥 폄훼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