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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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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8. 22. 16:51

'세계무대에 내놓을 일본오페라' 세 번째 작품으로 세계 초연
"시대정신에 부합한 오늘날의 오페라"
오페라 나타샤 (c) Rikimaru Hotta,  New National Theatre, Tokyo (4)
오페라 '나타샤'의 한 장면. (c) Rikimaru Hotta / New National Theatre, Tokyo
일본의 국립 오페라하우스인 신국립극장 도쿄(New National Theatre Tokyo, 이하 NNTT)는 2018/2019 시즌 지휘자 오노 카즈시(Ono Kazushi, 大野 和士)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세계 무대에 내놓을 일본오페라' 시리즈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말 그대로 세계적인 일본 창작오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지난 11일 NNTT에서 세계 초연한 호소카와 토시오(Toshio Hosokawa, 細川 俊夫) 작곡의 오페라 '나타샤(Natasha)'는 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오페라 '나타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작곡가 중 한 사람인 호소카와 토시오가 작곡했다. 윤이상의 제자이기도 한 호소카와 토시오는 일본 고전과 문화를 기반으로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치는 작곡가로 꼽힌다. 대본은 타와다 요코(Yoko Tawada, 多和田葉子)가 맡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및 일본의 유력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타와다 요코는 독일에 거주하며 일본어와 독일어로 집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호소카와 토시오는 물의 형상을 소리로 구현하는데 주력해왔다. 그의 작품에는 물의 이미지가 음악으로 형상화되어 종종 나타난다. 물 뿐만 아니라 바람, 나무 등 자연의 모습이 중심적으로 위치해 있다. 산업화와 매스 컬쳐, 배금주의, 대지진 등으로 인한 지구의 환경 위기를 주제로 한 이번 오페라에서도 그는 자연의 간절한 외침을 음악으로 되살렸다. 대본을 맡은 타와다 요코가 지향해온 탈민족, 탈경계의 대표적 특징 역시 오페라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오페라 나타샤 (c) Rikimaru Hotta,  New National Theatre, Tokyo (2)
오페라 '나타샤'의 한 장면. (c) Rikimaru Hotta / New National Theatre, Tokyo
오페라 '나타샤'는 황폐해진 터전을 떠나 방황하는 나타샤와 아라토가 거친 바닷가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때 바닷가에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수많은 소리가 속삭이듯 넘쳐나는데 그것은 바다를 칭하는 36개의 언어라고 했다. 일본어와 독일어, 우크라이나어까지 난무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지만, 서로의 공통 분모를 찾아 교감을 나눈다.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자라고 하는 제3의 인물이 나타나 이들을 지옥 순례로 이끈다.

작품은 방황하던 두 주인공이 구원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그 길에서 만난 여러 군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하는 전형적인 서사 구조로 되어있다. 나타샤와 아라토 또한 7개 지옥 순례의 끝에서 새로운 언어를 가지고 되돌아온다. 마치 단테의 '신곡'처럼, 나타샤와 아라토는 지옥을 순례하며 인간들이 망쳐놓은 지구의 모습을 마주한다. 지옥의 여정에서 주인공들이 목격한 것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대한 혹독한 대가다. 오페라 안에서 들려오는 지구의 신음은 이에 대한 청구서와도 같았다.

이 오페라에서 호소카와 토시오는 강한 조성 음악을 선보였다. 여기에 더해진 전자악기의 메탈릭한 음색은 기계화와 산업화로 망가진 환경을 상징하는 요소로 사용됐다. 파도나 물소리 등 호소카와 특유의 사운드 이펙트는 여전했지만, 이전 작품과는 달리 음악은 그의 메시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경험적 현실이 음악으로도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오노 카즈시는 도쿄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더불어 다양한 언어와 음악적 형태가 교차하는 변화무쌍한 작품을 깊이 있는 해석으로 잘 이끌었다.

오페라 나타샤 (c) Rikimaru Hotta, New National Theatre, Tokyo
오페라 '나타샤'의 한 장면. (c) Rikimaru Hotta / New National Theatre, Tokyo
연출가 크리스티안 래트는 강렬한 개성의 무대를 완성했다. 7개의 지옥을 거쳐가면서 등장하는 각종 인물들은 때로는 조잡스럽고 천박하게, 때로는 거칠고 피폐하게 무대를 채워나갔다. 클레멘스 발터가 디자인한 영상 또한 수준 높은 미디어 아트를 보여줘 오페라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나타샤를 맡은 소프라노 일제 에이렌스는 신비롭고 깊이가 느껴지는 음색으로 쉽지 않은 역할을 잘 소화했는데 특히 제6 지옥에서 절규하듯 토해낸 강한 영탄조의 아리아는 작품에 극적인 고양감을 선사했다. 아라토 역할의 메조소프라노 야마시타 히로카의 안정적이고 풍성한 발성과 빼어난 연기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는 오늘날의 화두와도 같은 기후 위기,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겨있다. 생태주의를 기반으로 한 오페라에 성별이 모호한 두 명의 여성 배역을 투 톱으로 내세운 것도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접근이다. 여러모로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의미에서, 최신 트렌드에 가장 부합한 오페라였다고 말하고 싶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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