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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겉보기에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도 씁쓸한 역설이 숨어 있다. K-콘텐츠 수익의 상당 부분은 해외 플랫폼 기업들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창작물의 이윤을 보장하는 것은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약칭 IP)인데, 넷플릭스를 비롯해 디즈니와 소니, 워너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퉈 K-콘텐츠 IP 확보에 나서고 있는 현실을 보면, 정작 한국이 K-콘텐츠를 '진짜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기묘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런 모습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선다. IP 종속이 심화되면 우리 문화와 콘텐츠가 다른 나라의 시장 논리에 좌우될 위험이 있다. 이는 국내 창작자들의 기회 축소와 콘텐츠 다양성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문화콘텐츠 IP의 성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다. 아직 팬덤이나 소비 규모가 작은 스몰 IP는 성공 확률이 낮지만, 일단 글로벌 팬덤을 확보한 슈퍼 IP로 성장하면 폭발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원천 콘텐츠를 공연과 게임, 굿즈 등 다양한 2차 저작물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스몰 IP가 슈퍼 IP로 등극하기까지 모든 주기에 걸친 정책적 지원과 새로운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기존의 일회성 콘텐츠 제작 지원을 넘어 지속성과 연결성을 갖춘 지원 체계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공모나 바우처를 통해 초기 제작비를 지원하되, 제작 및 수출 후에는 수익이 다시 생태계로 돌아오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바로 이런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차세대 슈퍼 IP를 꾸준히 발굴하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창작자와 제작자가 AI 에이전트와 협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공급해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창작자에게 콘텐츠 생성 도구와 시장 반응 시뮬레이션을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직감과 경험에 의존했던 제작 방식에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접근을 더해줄 수 있다. 나아가 IP 발굴과 관리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제작자에게는 콘텐츠 성과 분석과 예측, 그리고 슈퍼 IP로 확장하는 데 필요한 콘텐츠 변환 및 생성 인프라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슈퍼 IP 구축에 드는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실현하려면 범부처 협력 체계가 필수적이다. IP는 순전히 콘텐츠 경쟁력으로만 성장할 수 없다. IP 발굴부터 기술적 인프라, 마케팅 및 라이선싱, 금융세제, 공정계약, 저작권 보호 등 각 부처의 전문적이고 촘촘한 협업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문화강국위원회 같은 정책기구를 중심으로 문체부, 과기정통부, 산업부, 중기부, 금융위, 공정위 등이 협력해 조기에 성과를 내야 한다.
결국 이런 패러다임 전환의 성패는 두 가지에 달려 있다. 첫째, 스몰 IP를 슈퍼 IP로 키워낼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잘 설계할 수 있는가. 둘째, 거대한 거버넌스와 AI 지원 체계 속에서 창작자의 자유와 다양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문화는 단순히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이 아니라 사회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힘이다. 진정한 문화강국은 슈퍼 IP의 규모나 숫자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단기적 결과로 속단하지 말고 차세대 슈퍼 IP를 발굴하기 위한 실험과 실패가 허용되는 생태계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K-콘텐츠의 진정한 주인이자, 실용적인 수익 창출과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모멘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K-콘텐츠 IP 육성 대책 등 획기적인 정책 개발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발표한 글로벌 소프트파워 5대 문화강국을 달성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으뜸 국가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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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하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