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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K-기업] [기고] 국가핵심기술 인력 유출 방지, 지속가능한 기금방식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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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 기자

승인 : 2025. 09. 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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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 이재명 정부는 지난 8월 13일 국민보고대회 형식으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운영할 정책방향과 수단을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 아래 2대 국정원칙, 5대 국정목표, 123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 온 AI를 비롯한 혁신 관련 정책은 5대 국정목표 중 '세계를 이끄는 혁신 경제' 분야에 담겼다.

정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AI 3대 강국 도약 △기초가 탄탄한 과학기술 △혁신으로 도약하는 산업르네상스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 △성장을 북돋는 금융혁신이라는 추진전략을 내세웠다. 두말하지 않고 다 필요한 내용이며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혁신경제를 뒷받침하려면 국내적으로는 개발한 기술이 탈취되지 않도록 공정한 시장 환경이 조성돼야 하고, 외적으로는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그래야 혁신의 유인이 생긴다. 아쉬운 점은 국정과제에 기술 탈취 방지를 위한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 도입 등의 내부 단속을 위한 제도는 담겼지만, 핵심기술의 해외유출 차단방안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반도체와 자동차, 이차전지 등 우리 주력산업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으로 고전하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핵심기술이 중국 등으로 많이 유출됐다는 내용도 국회 국정감사 때나 언론을 통해서 종종 접한다. 2023년 10월 9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최근 8년간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은 153건, 이 가운데 국가핵심기술만 47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출된 기술의 3분의 2가량이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피해액은 약 25조원에 이른다.

현재 국가핵심기술은 2025년 5월 기준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로봇 등의 분야에 79개가 지정돼 있다. 정부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을 통해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나, 주로 근본적 예방보다는 사후적 처벌에 무게가 실려 있다. 설상가상으로 핵심기술을 보유한 인력유출 방지를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 정부가 2024년 12월 발표한 '제5차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종합계획'을 보면 정부의 대책이 근본적 예방보다는 처벌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오는 2027년까지 진행될 제5차 종합계획에는 △보호해야 할 기술과 기술 보유기관에 대한 관리 고도화 △국가핵심기술 수출·M&A 심사제도 정비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수사?재판 전문성 강화 및 합리적 처벌 △대학·중소기업의 보안역량 강화 및 인력관리 체계 고도화 등의 대책이 담겨있다. 겉으로는 다각도로 대안을 세운 것으로 보이나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핵심기술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인력관리 체계 고도화' 부분에 특허심사관 채용 정도이다. 정부는 올 2월께에 핵심기술 보유 퇴직 인력을 바이오(25명), 첨단로봇(13명), 인공지능(3명) 분야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한 바 있다.

삼성, 현대차 등 민간 대기업들의 대응도 한계가 많다.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퇴직자 관리, 보안시스템 강화, 교육 및 감시, 내부신고 제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적발 이후 소송에 의존하는 사후적 대응이 대부분이다. 반면 실제 기술유출은 더욱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해외 기업이 국내 핵심 인력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 자체를 흡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결국 핵심 인력이 유출되면 기술도 함께 빠져나간다는 의미다.

국가 차원에서의 근본적 대책은 명확하다. 핵심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 기업에 재취업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과거 중소기업청이 추진했던 '대·중소 기술인력 활용 지원 사업'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중단됐다. 퇴직기술인력을 채용한 중소기업에 인건비의 70%를 6개월 동안 지원하는 수준으로 2020년부터 몇 년 동안 운영했지만 지원 규모가 미미하고, 참여율도 저조해 중단됐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큰 한계로 작용했다고 추정된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이다. 2025년 6월 기준 약 3조원 정도로 운영되는 이 기금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출연으로 조성된다. 때문에 안정성과 지속성이 담보된다. 이 모델을 참고삼아 산업기술보호법에 '(가칭)기술유출방지기금'을 신설하고 기술과 관련된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함께 재원을 출연해 국가핵심기술과 인력유출 방지에 나선다면 예방 측면에서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 본다. 이 기금을 통해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퇴직 핵심인력을 채용할 경우 더 현실적인 지원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인력유출도 막고, 기술 경쟁력도 강화시킬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기술유출방지기금과 같은 제도는 정부와 국회, 산업계가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된다. 정부는 혁신경제를 말로만 외치지 말고, 핵심 인력을 지켜내는 탄탄한 제도를 도입하고 실행해야 한다. 국가핵심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은 개별 기업들의 손실을 넘어 국가 경쟁력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더 미루지 말고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최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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