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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투자는 투자대로 받고” 美의 무차별 기업 단속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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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08. 00:01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수백 명의 우리 국민을 이민 법규 위반으로 체포했다. 미 정부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주축이 돼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여 47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중 300명이 LG에너지솔루션과 그 하청업체 소속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은 "단일 현장에서 이뤄진 최대 규모 단속"이며 장기 내사를 거쳤다며 '실적'을 자랑했다. 우리 국민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사슬로 줄줄이 묶여 연행되는 영상도 올렸다.

체포된 대다수 직원이 미 현지 사무소에서 업무를 보거나 공장에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전문직 취업(H-1B)·비농업 단기 근로자(H-2B) 비자 등을 갖추지 않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문제가 된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상당수 우리 기업들이 직원을 미국에 출장 보낼 때 90일 단기 관광 및 출장 시 비자 신청을 면제해 주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B-1)' 비자를 받도록 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법적으로 따지면 '불법'일 수 있지만 우리 기업을 불법으로 내몬 주된 책임은 미국 측에 있다. 미국이 합법적이라고 판단하는 H-1B나 H-2B 비자는 발급에 수개월이 걸리고 그마저도 개수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첨단 제조업 관련 노하우나 경험을 갖춘 미국 내 인력을 구하기 힘든 우리 기업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국내 인력을 출장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수시로, 불규칙적으로 인력 파견이 필요한 업무인데 전문직 취업 비자 등을 기다리는 건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2013년부터 우리가 요구해 온 한국인에 대한 전문직 비자 쿼터를 미국이 거부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미국은 캐나다·멕시코(무제한), 싱가포르(5400명), 칠레(1400명), 호주(1만500명) 등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5국에 대해서는 국가별 연간 H-1B 비자 발급 쿼터를 할당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FTA를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쿼터를 주지 않고 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쿼터 문제가 의제에 올랐으나 미국 측은 응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미 무역협상과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3500억 달러(약 486조3000억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발표보다 50억 달러 늘려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60억 달러(약 36조12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렇게 미국 내 투자 이행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 기업의 활동을 도와주기는커녕 '일자리 훔쳐 가는 도둑'으로 몰아가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배신감마저 느낄 수밖에 없다. 일단, 미 측과 구금된 근로자 석방 교섭이 마무리돼 정부는 곧 전세기를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근본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내 투자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FTA 국가에 허용된 '전용 취업비자 쿼터'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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