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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쉬운 미술사’,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시대정신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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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9. 08. 12:58

추상표현주의와 뉴욕 화단의 전환, 폴록과 로스코로 배우는 예술의 언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청소년 대상 무료 강좌로 미술 감상의 새로운 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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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현대미술 교육의 장을 마련한다. 오는 10일부터 24일까지 세 차례 진행되는 '청소년을 위한 쉬운 미술사'는 이름 그대로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어렵게만 느껴지던 미술사를 친근하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이는 단순히 '쉽게 풀어낸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기획은 전후 세계사의 격동 속에서 등장한 추상표현주의를 청소년에게 소개하며, 현대미술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함께 전하는 깊은 수업을 지향한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 같은 낯선 이름이 이번 기회를 통해 동시대와 이어진 생생한 이야기로 다가간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ACC 복합전시6관에서 열리고 있는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 전시와 연계해 기획됐다. 전시장은 곧 교실이 되고 작품은 교재가 된다. 강의실에서 접한 이론이 전시장 안에서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구조는, 청소년들에게 미술사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는 현장임을 보여준다. 작품을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교육의 울림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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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첫 수업은 9월 10일 '미술의 중심지를 바꾼 그림들: 추상표현주의와 뉴욕의 시대'라는 주제로 열린다. 파리 중심의 미술사가 뉴욕으로 이동한 배경과 그 과정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짚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탄압을 피해 유럽 예술가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뉴욕은 세계 문화의 수도로 부상했다. 청소년들에게 이 장면은 단순한 예술사의 사실을 넘어, 한 도시가 어떻게 세계사의 전환과 맞물려 중심지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수업이 된다. 당시 작품에는 정치·경제, 이주와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고, 추상표현주의는 단순한 화풍이 아니라 자유와 실험, 표현의 해방을 상징하는 20세기의 가치가 집약된 산물이었다.

이어 9월 17일에는 '몸으로 그리는 붓질, 흔적을 남긴 손들: 잭슨 폴록과 그의 친구들'이 주제로 열린다.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두고 물감을 흩뿌리며 작업했다. 우연과 즉흥의 결합은 당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에는 예술의 해방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청소년들은 이 수업을 통해 그림이 반드시 정형화된 방식으로만 만들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몸의 움직임이 하나의 기록이 되고, 그 흔적이 작품으로 남는다는 발상은 예술이 규범이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임을 알려준다. ACC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발견하길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 시간인 9월 24일은 '말 없는 이야기들: 마크 로스코에서 시작된 추상의 또 다른 길'로 꾸며진다. 로스코의 화면은 얼핏 단순한 색면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침묵 속 대화 같은 깊은 울림이 숨어 있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거대한 색의 장막이 관람자를 감싸며 언어를 넘어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청소년들은 이 체험을 통해 추상이 난해한 용어가 아니라 자기 감정과 세계를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임을 깨닫게 된다. 로스코가 추구했던 것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이어지는 전시 감상은 그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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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쉬운 접근을 통해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는 점이다. 전문적이고 난해하게 들리던 현대미술사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과 사례 중심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예술사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현장 감상을 통해 흥미와 이해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교과서 속 짧은 문장으로만 접했던 미술사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그림과 이야기, 시대와 연결된 서사로 되살아난다.

정책적 의미도 분명하다. ACC는 교육부의 '교육기부 진로체험 기관 인증'을 받은 기관으로, 공공문화기관으로서 청소년 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이번 프로그램 역시 청소년 대상으로 무료 운영되며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이는 예술 교육의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청소년이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넓힌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청소년 교육이 단순한 체험을 넘어 '문화적 시민성'을 기르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술 감상은 취향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를 읽는 눈을 키우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훈련이 되기도 한다. ACC의 이번 시도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 청소년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강의는 전문 강사의 설명 후 전시장 이동으로 이어져, 작품 감상과 이론 학습이 결합된 경험을 제공한다. 참여 청소년들은 미술사의 큰 흐름과 함께 작가들의 삶과 고민을 이해하고, 나아가 예술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읽는 눈을 기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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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김상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이번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현대미술을 보다 친근하게 소개하고, 미술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시대와 인간을 이해하는 창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청소년들이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청소년을 위한 쉬운 미술사'는 결국 교과서 바깥의 수업이다. 교과서가 이름과 연도로 요약하는 미술사를 청소년들은 전시장 안에서 살아 있는 장면으로 마주한다. 추상표현주의의 격렬한 붓질은 오늘날에도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며, 로스코의 색면은 침묵 속 사유의 깊이를 일깨운다. 이러한 체험은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문화 행사 참여를 넘어 자기 감정과 생각을 확장하는 순간이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이번 교육은 예술을 어렵게만 느껴왔던 청소년들에게 열린 교실이자, 미래 세대의 감수성을 키우는 작은 발판이다. 예술은 박물관 속 난해한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는 대화임을 알려주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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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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