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은 등 네 작가, 비가시적 세계를 예술로 재현 내년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전시
올해의 작가상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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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5' 후원작가로 선정된 언메이크랩(왼쪽부터), 임영주, 김영은, 김지평 작가. /사진=전혜원 기자
"저는 러시아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꿈꿀 때 러시아 말로 나와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 아니에요."
한 고려인 중년 남성의 이 고백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김영은 작가의 신작 '듣는 손님'(2025)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언어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동시에 소외의 근거가 되는 이중적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영은은 '듣는 행위'를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드러나는 비평적 실천의 장으로 해석한다. 소리가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간직한 매체로서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작가는 '듣는 손님'과 'Go Back To Your'(2025) 등 신작 3점을 통해 한국 거주 고려인 공동체와 로스앤젤레스 한인 이민자들이 겪는 이주의 경험과 번역, 중재의 과정을 디아스포라의 기억으로 재구성해낸 다.
올해의 작가상 2025_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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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김영은 작가의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는 김영은과 함께 임영주, 김지평, 언메이크랩 등 올해 후원 작가로 선정된 네 작가(팀)의 신작과 기존 주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매체와 언어를 통해 감춰지거나 누락되고, 소외되거나 잊힌 세계의 층위들을 작품으로 풀어낸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임영주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믿음'의 형성 과정을 탐구한다. 대표작 '고 故 The Late'(2023~2025)는 한국의 '가묘(假墓)' 풍습에 착안해 상상 속 '빈 무덤'을 구현한 다채널 설치작품으로, 관람객은 천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누워서 바라보며 마치 무덤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김지평 〈디바-무당〉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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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평의 '디바-무당'. /국립현대미술관
김지평은 '동양화'를 과거에 종속되지 않는 열려있는 서사의 장으로 본다. '다성多聲 코러스'(2023~2025) 연작에서는 할머니, 광대, 무녀를 상징하는 병풍 앞에 마이크와 풍물 악기를 배치해 실제 소리는 나지 않지만 시끄러운 합창의 울림을 상상하게 한다. '코즈믹 터틀'(2025)은 동해안 거북이 내장에 대남 선전전단이 발견된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신화 속 문자의 전달자가 현대의 이념 선전으로 인해 파괴되는 아이러니를 형상화했다.
최빛나와 송수연으로 구성된 콜렉티브 언메이크랩은 신작 '뉴-빌리지'(2025)에서 부산 삼각주 지역의 '짭짤한 토마토' 재배지가 스마트시티로 변모하는 과정을 다뤄 기술적 낙관주의가 선전하는 획일적 미래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언메이크랩, 〈뉴-빌리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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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메이크랩의 '뉴-빌리지'. /국립현대미술관
2012년부터 시작된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현대미술의 실험적 흐름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작가 후원 프로그램이다. 최종 수상자는 전시 기간 중 국내외 심사위원들과의 공개 대화 및 2차 심사를 거쳐 내년 1월 발표되며, 추가 후원금 1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해의 작가상'은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를 다루는 작가들과 함께 한국현대미술의 실험적 흐름을 가늠해 보는 국내 대표 전시"라며 "이번 전시가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