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여름은 혹독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폭염 속에서 숨쉬기조차 버거웠고, 계절이 주던 낭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름은 더 이상 젊음의 설렘이 아닌, 견뎌야 할 시련의 계절이 되었다. 그래서 문득 묻게 된다. "기후 위기의 시대, 우리는 계절이 간직해 온 고유한 감성과 감각을 점점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초가을 오후, 선선한 바람이 불 때 느끼는 기분 좋은 쓸쓸함, 눈 내린 아침, 발밑에서 뽀드득 울리는 소리 같은 것들. 그런 감각이 사라진다면, 계절은 단지 기후의 변화일 뿐, 더 이상 삶의 일부로 체감되지 않는다.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하게 현실을 대체한다. 인공지능이 사고와 추론을 대신하고, 가상현실이 새로운 세계를 구현한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갈망이 있다. 손끝에 닿는 촉감, 코끝을 스치는 냄새, 눈앞에 존재하는 실체. 우리는 이를 '물성(物性)'이라 부른다. '물성매력'이란 '경험 가능한 물리적 속성을 통해 손에 잡히는 매력을 지니게 만드는 힘'이다. 오래된 책장의 냄새, 손때 묻은 나무 가구의 질감, LP판의 사각거림, 누군가의 필체가 담긴 손 편지처럼, 디지털로는 구현할 수 없는 감각의 세계다. 감각은 찰나를 포착하지만, 물성은 그 찰나를 기억으로 저장한다. 그것은 감정을 담고, 관계를 이어주며, 삶을 구체화하는 매개가 된다.
문학은 감각과 물성을 가장 섬세하게 포착해 온 예술이다. 그 대표적 예가 되는 작품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과 복수를 넘어, 감정과 자연, 공간의 물성이 하나로 융합된 세계를 그린다. 고아 히스클리프가 언쇼 가문에 입양되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는 캐서린 언쇼와 운명적인 유대를 맺지만, 계급과 자존심, 오해로 인해 비극을 겪는다. 캐서린은 린턴 가문의 에드거와 결혼하고,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위해 떠난 뒤 그녀의 가족과 후손에게까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죽음조차 그들의 애증을 완전히 가르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추상이 아니라 감각으로 체화된 언어이며, 감정은 기억이 아닌, 물성의 형태로 세계 속에 각인된다.
작품의 중심 공간인 '폭풍의 언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북풍이 몰아치는 언덕, 유리창을 두드리는 바람, 황량한 들판은 인물의 내면과 긴밀하게 호응한다. 언덕 위에 서 있는 그 집은 북풍이 직격하는 곳이라, 겨울마다 눈보라가 그대로 들이친다. 이런 풍경 묘사는 자연이 감정의 질감이 되는 문학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캐서린은 말한다. "나는 히스클리프예요. 그는 나 자신보다 더 나 자신이에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히스클리프의 고백은 모든 사물에 그녀가 닿아 있고, 이 집, 이 공기, 이 땅 모두가 그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존재는 감각을 통해 되살아나고, 물성은 그것을 증명하는 그릇이 된다.
브론테는 공간의 질감마저도 치밀하게 대비한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어린 시절을 보낸 거칠고 야성적인 '폭풍의 언덕'은 두 사람이 공유한 본능의 세계이며, 린턴 가문이 있는 '트러슈크로스 그레인지(Thrushcross Grange)'는 문명화된 상류 사회의 상징이다. 삐걱거리는 계단, 장작 타는 소리, 두꺼운 돌담 등은 디지털로는 온전히 재현될 수 없는 감정의 밀도를 품고 있다. 브론테는 이 감각적 세계를 통해 존재와 감정,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감각으로 직조해 낸다.
우리는 왜 지금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이 작품이 감각의 깊이, 물성의 진실, 존재의 울림을 정교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든 '물멍', '불멍', '별멍' 같은 행위들은 단순한 힐링 콘텐츠가 아니라,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감각의 회복이며,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지금, 여기'의 실재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감각을 통해서만 '진짜'를 느낀다. 히스클리프는 그녀의 혼이 그가 묻힐 땅 위를 떠다니며, 바람과 함께 폭풍 속을 달린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포착하는 진실이다. 감각은 존재를 불러내고, 기억은 그 흔적을 지킨다. 하지만 우리는 물성의 매력이 언제든 과소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도 경계해야 한다. 감각이 상품화되고, 감정이 장식처럼 소비될 때, 진짜 감각의 깊이는 쉽게 사라진다. 진정한 물성의 가치는 경험으로 체화된 감정, 의미와 정서가 깃든 만남에서 비롯된다. '폭풍의 언덕'이 오늘날에도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감정과 공간, 존재를 하나의 감각으로 엮어낸 진정성 때문이다.
감각이 깨어나는 계절, 가을이다. 모든 것이 맑아지고 선명해지는 시간. 바삭한 낙엽의 질감,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 새벽 강가에 피어나는 물안개에서 우리는 자연의 물성을 다시 느낀다. 감각과 기억이 되살아나고, 마음속 그리움이 고개를 들 때, 우리는 잊고 지냈던 삶의 온기와 마주한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감각은 더 깊이 우리를 삶의 본질로 이끈다. 문학은 이 감각의 심연을 일깨우고, 우리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의 삶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새롭게 응시하게 한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