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특권·비리 더는 못 참아”
|
21일(현지시간) AFP·AP통신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 리살 공원에 경찰 추산 약 8000명이 모여 홍수 예방 사업을 둘러싼 정치권의 뇌물 의혹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검은 옷을 입고 "우리는 일해서 도둑질 대가를 치른다" "이 체제를 저주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번 시위는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부친이 계엄령을 선포했던 1972년 9월 21일에 맞춰 열렸으며,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리살 공원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은 더 두드러졌다.
시위 지도부 프란시스 아퀴노 디는 "홍수 피해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데, 부패 연루자들은 SNS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과시한다"고 주장했다. 참가자 중 일부는 진흙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퍼포먼스를 벌였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해적 깃발도 현장에 등장해 반부패 저항의 상징처럼 쓰였다.
시위는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뚜렷했다. 한 대학생은 AFP에 "직접 홍수를 겪어봤다. 이런 부패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은 지난 3년간 홍수 예방 사업에 5450억 페소(약 13조 2000억원)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체 사주 부부는 최근 상원 청문회에서 하원의장 마틴 로무알데스를 포함한 17명의 의원에게 돈을 건넸다고 증언했다.
이 여파로 로무알데스 의장은 사임했고, 프랜시스 에스쿠데로 상원의장도 계약업체 연루설로 교체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독립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형사 고발까지 예고했다. 재무부는 부패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최대 2조 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필리핀의 분노는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국회의원 특혜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해 최소 10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실종됐다. 네팔에서는 총리가 물러났고, 동티모르에서는 국회의원 차량·연금 특혜에 반발한 시위가 이어졌다.
잇따른 거리 시위는 아시아 전역에 퍼지는 공통된 흐름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정치권 기득권 구조를 직접 겨냥하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