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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를 가진 해군의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이번 관함식에서 우리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DDG)과 3000톤급 잠수함(SS-Ⅲ), 대형수송함(LPH), 상륙함(LST-Ⅱ) 등 함정 31척 최신예 함정들을 비롯해 최근 배치된 신형 대잠 헬기와 초계기까지 선보여 이날 관함식에 참가한 각계각층의 국민들로부터 힘찬 응원의 박수를 받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이란 전쟁 등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터지는 와중에 전개된 해군 관함식은 많은 국민들에게 안보, 특히 영해수호의 중요성을 일깨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날 눈길을 끈 것은 이지스함 같은 대형 함정들과 최첨단 함정들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심해를 지킬 잠수함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박위함(SS-Ⅰ, 1200t급), 이범석함(SS-Ⅱ, 1800t급), 대한민국 독자기술로 건조된 3000t급 잠수함(SS-Ⅲ) 3번함인 신채호함 등 평소 깊은 물속에서 은밀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잠수함들이 물위로 고개를 내밀어 행진했다.
이어진 대잠작전 훈련 시범도 인상적이었다. 해상초계기 P-8A가 음파탐지 소노부이를 투하하고, 해상작전헬기 MH-60R이 디핑소나를 강하해 수중 잠수함을 탐지·추적했다. P-8A와 MH-60R이 탐지한 적 잠수함을 격침하기 위해 해상작전헬기 Lynx가 청상어(경어뢰)를 투하했다. 적 잠수함이 격침되는 순간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관람객들에게 전달됐다.
최근 각종 전장에서 드론을 비롯한 무인기들이 활약하고 있는데 우리 해군에서도 무인전력을 통합해 활용하고 있고 또 미래에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임을 보여주었다. 우선 관함식에서는 유·무인전력을 활용한 해상화력시범을 보였다. 무인항공기(UAV), 무인수상정(USV)과 전투전대 함정 4척이 협력하여 적함을 정찰, 경고사격한 후 함포 일제사격을 통해 가상의 적함을 격침시키는 훈련을 해보였다.
무인기, AI 접목 등이 군 전력 강화의 핵심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군은 이날 관함식에서 유무인 통합 '네이비 시 고스트(Navy Sea Ghost)'를 가상 영상으로 시현해 보이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후 최근의 산업지형을 바꾸고 있는 인터넷, 온라인은 군(軍)에서 먼저 개발돼 사용되던 것이 상업화된 것이다.
이는 군이 첨단기술의 후발사용자라기보다는 선발개발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네이비 시 고스트' 시연은 우리 군에서도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군사력 증강에 앞장서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해군 관계자는 최근 관심이 뜨거운 우리나라 방위산업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사실 관함식은 국내 건조 이지스구축함, 최신예 호위함, 3000t급 잠수함 등 'K-해양방산' 전력을 대내외에 선보임으로써 대한민국 방위산업 발전과 'K-조선' 홍보를 지원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행사가 국내뿐만 아니라 애초에 계획됐던 대로 해외의 함정들까지 참여하는 국제적 행사로 치러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그랬더라면 전 세계 매체에 보도되는 등 홍보효과 역시 배가됐을 텐데….
이날 저녁 때 나온 이야기가 K9 자주포, 탱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잠수함도 세계로부터 잠수함 건조 최강국인 독일에 못잖은 경쟁력이 있음을 인정받으면서 방산 효자 수출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캐나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노후 Victoria급 잠수함 4척 교체를 위한 60조원 규모의 대형 사업에 대한 글로벌 입찰을 실시했고 프랑스 나발 그룹(Naval Group), 스페인 나반티아(Navantia), 스웨덴 사브(Saab) 등 유럽의 대표 방산업체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8월 26일 한화오션(한국)이 TKMS(독일)와 함께 '가장 적합한 공급자'로 공식 발표됐다. 이에 따라 독일도 한국의 기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폴란드가 연내 확정 지을 예정인 차세대 잠수함 사업, ORKA 프로젝트에서도 유리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위산업은 그 특성상 규모가 수십조원대에 달할 정도로 거대할 뿐만 아니라, 경제성 이외에도 국제지정학적 정치·외교 요소들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 나토 등의 호의적 지원이 있을 때 입찰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최근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지만 우리 정부와 한화오션이 잘 협력해서 한화오션이 폴란드와 캐나다의 잠수정 수주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될 때 어려워지고 있는 한국경제의 숨통도 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관함식 참관은 필자에게 해양안보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하고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미래를 이리저리 그려보게 했다.
김이석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