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지로 마을길 넓히고 내화 설계로 ‘안전한 농촌형 마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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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경북 북부를 휩쓴 초대형 산불은 안동·의성·청송·영덕·영양 등 5개 시군에서 3800여 가구의 주택과 농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230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와 3500명 가까운 이재민을 남긴 '영남산불'은 단일 재난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정부와 경북도는 화재 직후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사업을 3단계로 나눠 추진 중이다. 1단계 긴급 복구(임시주거·기초정비)가 마무리된 뒤, 2단계 본격 주택 복구가 이번 달부터 진행되고 있다.
경북도는 피해주택 2500가구를 복구대상으로 정하고, 전체 24개 마을 중 7~8개 마을을 '재창조형 시범마을'로 선정했다. 나머지는 기존 자리에 단순 복구 형태로 진행된다. 시범마을에는 도 공공건축가와 도시계획 전문가가 투입돼 마을 단위로 재배치와 설계가 이뤄진다.
배용수 경북도 건설도시국장은 "이번 복구는 단순히 집을 다시 짓는 게 아니라 마을의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작업"이라며 "대지 면적이 좁고 도로가 비좁은 기존 농촌마을 구조를 환지를 통해 정비하고, 공동체 공간과 기반시설을 함께 확충해 주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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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비는 가구당 20평 기준 1억원, 20평 초과 1억2000만원까지 지원된다. 여기에 농어촌주택개량사업(연 2%)과 주택도시기금(연 1.5%)을 활용한 저리 융자도 연계된다. 경북도는 피해 주민의 자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시공 컨설팅을 제공하고, 복구비를 개인 계좌로 직접 지급해 시공사 선택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복구사업의 핵심은 조립식 구조물로 짓는 '모듈러 주택'이다. 콘크리트, 철골, 목재 등 세 가지 형태의 모듈러 주택이 도입된다. 주요 구조물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공법은 기초공사부터 입주까지 약 3주면 완공 가능하다. 시공비는 평당 약 600만원 수준으로, 기존 벽돌이나 블록을 쌓아 짓는 방식보다 20~25% 저렴하다.
배 국장은 "모듈러는 내진성과 단열, 방음 성능이 우수하고, 품질이 균일해 복구 속도와 안전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며 "전용 23평 기준으로 1억2000만원이면 짓고, 하자보수는 5년간 무상으로 보증한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복구 모델을 현장에서 검증하기 위해 산하기관인 경북개발공사를 통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개발공사는 모듈러 시범주택 10동의 설치를 완료했으며, 추가 5동도 발주를 마쳤다. 완공된 시범주택은 10월 중순부터 일반에 공개돼 피해주민과 일반 귀촌 희망자 모두 견학할 수 있다. 경북도는 내년 상반기까지 마을별 실시설계를 마무리하고, 하반기 본격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북도는 복구사업을 단기 재건에 그치지 않고 '안전한 농촌형 마을'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다. 도는 주택 설계 단계에서부터 내화(耐火) 자재 사용을 확대하고, 방화수로·대피공간·비상경로를 반영했다. 마을 회관에는 비상전원과 방재 창고를 설치하고, 주요 산림 경계에는 완충녹지를 조성해 산불 확산을 차단한다. 배 국장은 "화재를 겪은 마을이 다시 불에 타지 않도록 처음부터 안전 기준을 새로 세우고 있다"며 "이번 복구를 계기로 산촌형 방재마을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북도는 이번 복구사업을 '지방소멸 대응형 농촌재건 모델'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배 국장은 "마을이 무너지면 지역이 사라진다. 이번 복구는 단순 재해 복원이 아니라, 사라지는 마을을 살아나는 마을로 바꾸는 시작점"이라며 "환지로 마을길을 넓히고, 거점공간과 공용시설을 확충해 청년과 귀농인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농촌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