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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아닌 잡무노동자”…학교 시스템이 만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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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소영 기자

승인 : 2025. 10. 13. 17:55

민원 스트레스 세계 2위…교사들의 숨겨진 고통
한국 교사 주당 근무시간 43.1시간…수업보다 행정이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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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노후한 학교 시스템을 메우고 인력 공백을 대신하는 등 과도한 행정에 시달린 교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다. 행정업무와 시설 관리, 공석 보충까지 떠안은 교사들이 구조적 탈진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죽음조차 개인의 비극이 아닌, 고장난 교육 시스템이 빚은 '사회적 재난'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추석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새벽 충남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 A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방송장비와 시청각 기기 관리, 교내 방송 운영을 전담했다. 교실 수만 60개에 달하는 대형 중학교였다. 하지만 방송 장비는 대부분 노후화된 상태였다. 그는 스트레스로 신경정신과 진료도 예약해 둔 상태였다. A씨는 본업무 외에 지난 6월부터 교권 침해가 발생한 학급의 임시 담임도 맡았다. 최근엔 담당자 공석으로 인해 추가 행정업무까지 떠안았다.

문제는 이 죽음이 결코 개인적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방송·시청각 업무 등 교육 외 잡무가 교사에게 상시 전가되고, 인력 공백이 발생하면 '버티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구조는 전국 학교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선 행정요원·장비관리자·민원 대응자로 전락했다. 개인의 헌신으로 유지되는 학교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비극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10일 발표한 국제교사학습조사(TALIS) 2024에 따르면 한국 중학교 교사 중 21%가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OECD를 포함한 54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전체 평균은 11.1%였다.

교직의 자부심과 현장의 체감은 괴리되고 있다. 한국 교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43.1시간으로 OECD 평균(41.0시간)보다 길다. 그러나 실제 수업시간은 18.7시간으로 평균(22.7시간)에 미치지 못한다. 가르치는 시간보다 행정에 쓰는 시간이 더 많다는 뜻이다.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학부모 민원(56.9%) △교실 내 질서 유지(48.8%) △과도한 행정업무(46.9%) △외부 행정기관 요구(42.7%) △학생의 위협·언어폭력(31.2%)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원 스트레스는 포르투갈(60.6%)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현장 교사들도 '죽음 이후에야 주목하는 사회를 멈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중등 교사는 "교육청에서 '마음건강 설문조사'나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보내오긴 하지만, 정작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며 "행정업무에 치이고, 민원에 시달리고,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은 "교사가 수업 외 업무에 짓눌려 고통받는 현실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동료와 선배, 후배를 잃는 슬픔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며 "정부와 충남교육청은 경찰 조사와 진상 조사를 바탕으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순직이 즉각 인정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입장을 밝혔다.
설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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