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도, 스타도 없었지만…공동체가 만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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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베르데는 예선 내내 불가능에 가까운 여정을 이어왔다. 카메룬, 앙골라, 리비아, 에스와티니 등 강호들이 포진한 조에서 전문가들은 대부분 "본선 진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부비스타(본명 페드루 브리투) 감독은 팀을 정비하며 한 경기씩 차근차근 점수를 쌓았다. 마지막 경기에서 그 결실이 폭발했다. 후반 시작 이후 흐름을 주도하던 카보베르데는 다일론 리브라멘토의 선제골로 균형을 무너뜨렸고, 이어 윌리 세메도가 추가골을 보탰다. 그리고 경기 종료 직전, 베테랑 수비수 스토피라가 추가시간에 쐐기골을 완성했다. 세 명의 득점자는 모두 서로 다른 세대, 다른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흩어져 있던 조각이 하나로 모이며 완성된 승리였다.
경기가 끝나자 부비스타 감독은 벅찬 표정으로 선수들을 끌어안았다. '우리는 작지만, 우리의 꿈은 대륙보다 크다'는 메시지는 이번 여정을 통해 분명해졌다. 그 말은 단순한 승리 소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세계의 변두리에서 존재를 증명해온 섬의 선언이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카보베르데 축구의 상징이었다. 은퇴 후 고향에서 지도자로 성장한 그는, "섬의 아이들이 세계를 향해야 한다"는 믿음을 품고 선수들을 모았다. 그의 전술은 화려하지 않았다. 수비를 단단히 세우고, 빠른 전환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실용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짜로 만든 것은 전술이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카보베르데 대표팀의 절반 이상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태어난 2세 선수들이다. 언어도, 성장 배경도 다르지만 그들의 피에는 바다의 기억이 흐른다. 부모 세대가 떠나왔던 섬, 잊히지 않은 고향. 부비스타 감독은 이들을 설득해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혔다. "당신의 부모가 떠나온 그 섬이, 지금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 한 문장이 모든 걸 바꿨다. 해외에서 뛰던 선수들이 하나둘 귀국했고, 그들의 참여로 대표팀은 체계와 경쟁력을 갖추었다. 바다가 흩어놓은 사람들을 축구가 다시 모아 세운 것이다.
이번 본선 진출로 카보베르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되었다. 2018년 아이슬란드가 세운 기록 이후 여섯 해 만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한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나라의 축구'가 세계 축구의 경계를 확장시킨 순간이다. 아이슬란드가 인구 34만 명 안팎의 작은 공동체로 월드컵 무대에 서며 돌풍을 일으켰던 것처럼, 카보베르데 역시 인프라와 예산, 선수층이 부족한 현실을 넘어섰다. 그들의 공통점은 규모가 아니라 밀도였다. 아이슬란드는 국가 주도의 장기 육성 시스템으로, 카보베르데는 디아스포라의 네트워크로 자신들의 축구를 세웠다. '국가'보다 '공동체'가 먼저 움직인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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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음악과 시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카보베르데의 대표 음악 '모르나(Morna)'는 떠남과 그리움을 노래한다. 느린 리듬과 서정적인 선율 속에는 슬픔과 자긍심이 공존한다. 이번 월드컵 진출 역시 그 감정의 확장처럼 느껴진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나라'였던 카보베르데가, 축구를 통해 세계의 무대에서 자신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라이아 시내 곳곳에서는 본선행을 기념하는 거리 응원과 자발적 축하 노래, 응원가가 울려 퍼졌고, 아이들까지도 블루샤크즈를 상징하는 구호를 따라 부르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음악과 축구가 다시 섬의 문화적 심장을 뛰게 했다.
이번 성취는 아프리카 축구의 판도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오랫동안 월드컵 본선은 나이지리아, 세네갈, 카메룬 같은 강호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탄자니아, 기니비사우, 가봉 등 새로운 팀들이 부상하고 있다. 그 흐름의 상징적 정점이 카보베르데다. 예전에는 인구와 예산이 곧 경쟁력이라 여겨졌지만, 이제는 구조와 철학이 결과를 바꾸고 있다. 부비스타 감독은 대규모 투자가 아닌, 분산된 리그와 유럽 클럽 간의 협력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선수 육성도 해외와 연계해 운영했다. 작은 나라의 생존법은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 모델은 한국을 비롯한 중견 축구국가에도 시사점을 준다. 폐쇄적인 리그 구조나 단일 시스템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개방형 네트워크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카보베르데는 자원이 부족했기에 오히려 구조적으로 열린 팀이 될 수 있었다. 세계 각지의 카보베르데 출신들이 온라인으로 대표팀 소식을 빠르게 공유하고 응원을 보태는 풍경은, '국가 대표'의 개념이 시대와 함께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항해는 이제 본선으로 이어진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카보베르데는 처음으로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을 상대하게 된다. 결과가 어떻든 이미 그들은 상징적인 승리를 거뒀다. 세계 언론은 인구 50만여 명의 나라가 북미 무대를 밟는 역사적 장면을 생생하게 전했다. 한편 팀 내부에서는 '우리는 관광하러 가는 팀이 아니다. 우리는 경쟁하러 간다'는 태도가 공유되고 있다. 이 한 문장은 이 팀의 성격을 가장 정확히 설명한다.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경기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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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베르데의 월드컵 진출은 단지 작은 나라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존재를 증명한 이야기'다. 경쟁의 질서 속에서 크기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문화적 상상력은 언제나 규모보다 깊이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다시 일깨운다. 대서양의 바다 끝에서 출발한 이 작은 팀은 이제 세계의 무대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그들의 축구는 승리보다 더 큰 의미를 남긴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세계에 들려주는 하나의 목소리이자, 작은 공동체가 꿈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바다를 건너온 선수들이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눈물을 흘리던 그날의 장면은, 인간이 스스로를 믿을 때 어떤 경계를 넘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제 카보베르데의 바람은 북미 대륙을 향한다. 그 바람은 묻는다. "당신의 섬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바다는 얼마나 넓은가."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우리는 작지만, 우리의 꿈은 대륙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