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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22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평화 프로세스에 진정성 있게 임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 주요 석유기업을 제재 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재로 두 기업은 미국의 금융시스템에서 사실상 퇴출되며, 달러 결제가 전면 차단된다. 이를 위반한 외국 금융기관도 연쇄 제재를 받을 수 있고, 개인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하며 "이번 제재는 매우 강력하고 중대한 조치"라며 "러시아의 두 핵심 석유기업을 겨냥했지만,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지원 강화를 위해 긴급히 워싱턴을 방문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각국은 이번 제재를 환영했다. 바이바 브라제 라트비아 외교장관은 "두 기업 모두 러시아 석유산업의 중추로, 이번 조치는 실질적 타격이 될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이 긴밀히 공조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유럽연합(EU)도 곧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금지를 포함한 추가 제재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마이클 카펜터 국제전략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은 "이번 제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본격적 조치로, 러시아의 가장 취약한 '석유 수익원'을 직접 겨냥했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과거 북극해·심해 탐사 부문만 제한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완전 봉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전날 밤 공습은 트럼프-푸틴 회담이 돌연 취소된 직후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측이 여전히 평화협상과는 거리가 있다"며 회담 연기를 발표했다. 러시아는 이날 새벽까지 드론 400기와 미사일 28발을 동원해 키이우, 자포리자, 오데사 등 주요 도시를 폭격했다. 전력망이 손상돼 대부분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했고, 러시아 인접 지역인 체르니히우와 수미는 암흑에 잠겼다.
이번 회담 취소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러시아 발언이 급격히 변해온 과정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꼽힌다. 그는 한때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토마호크 미사일 판매를 검토하다가, 지난주 푸틴과의 통화 후 압박 수위를 낮추며 휴전 중재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면서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이 제안한 즉각적인 휴전은 8월 알래스카 회담에서 합의한 원칙과 맞지 않는다"며 "전쟁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고 우크라이나의 '나치 정권'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외교를 회피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타격 능력이 약화하자마자, 러시아의 협상 의지가 사라졌다"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러시아 전략핵전력 훈련을 직접 지휘하며 탄도미사일 발사 영상을 공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회담 준비는 계속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양국의 신뢰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푸틴 전 연설문 작성가 아바스 갈리아모프는 "지금 전쟁을 멈춘다면 푸틴은 이 전쟁의 명분을 설명할 길이 없다"며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국민에게 어떤 '성과'를 내세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