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문화의 '밈' 수용, 시민 참여형 플랫폼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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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는 이번 프로젝트를 단순한 전시가 아닌 참여형 문화 이벤트로 기획했다.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뿐 아니라, 로비를 지나는 시민 누구나 루피 앞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열었다. 하늘마당은 ACC에서 가장 사랑받는 야외 공간으로, 가족이나 연인 단위 방문객이 도심 속에서 휴식과 포토타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운영된다. ACC 관계자는 "전시 관람 전후로 자연스럽게 들러 즐길 수 있는 유쾌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ACC가 걸어온 10년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ACC는 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 기관으로서 수많은 전시, 공연, 창제작 프로젝트를 이어왔지만, 다소 엄숙하고 학술적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깨고 최근에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김상욱 전당장은 "공공문화공간이 더 이상 조용히 관람하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시민이 참여하고 공감하는 열린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피의 등장은 바로 그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잔망루피'는 ㈜아이코닉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속 캐릭터로, 최근 SNS 밈(meme)과 이모티콘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솔직하고 엉뚱한 성격, 현실적인 대사로 세대를 아우르며, 일명 '루피 세계관'을 낳기도 했다. ACC가 이 캐릭터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공공이 대중의 언어로 소통하는 방식'을 찾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예술과 콘텐츠, 공공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려는 문화행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셈이다.
문화계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공공문화의 MZ화' 흐름 속에 놓고 본다. 과거 공공기관이 예술 중심의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제는 유머와 감성, 참여가 중심이 되고 있다. ACC가 시민의 일상 언어인 '밈'과 '이모티콘' 속 캐릭터를 공간에 들인 것도 그 변화의 일환이다. 실제로 ACC는 '시민이 즐기며 머무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향후에도 체험형 콘텐츠를 확대할 계획이다.
ACC는 수험생 세대를 위한 이벤트도 준비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수험생이 루피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 기념품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청년 세대가 ACC를 통해 문화적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SNS 확산을 기반으로 한 이 이벤트는 디지털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는 동시에, ACC의 이미지를 '젊고 유쾌한 문화 플랫폼'으로 새롭게 각인시키는 전략적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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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 전문가들은 이번 협업을 '공공 IP 협력 모델'의 한 예로 본다. 그동안 캐릭터 산업은 방송과 유통 중심의 민간 콘텐츠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공공기관이 공간 브랜딩이나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서울시의 '핑크퐁' 협업, 한국관광공사의 '펭수' 캠페인, KTX의 '라이언 열차' 운영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ACC의 '잔망루피' 프로젝트는 지방거점 공공기관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민 체험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2015년 개관 이후 ACC는 창제작센터와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등 다양한 공간을 통해 아시아 문화 교류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1천여 건 이상의 전시·공연·연구 사업이 진행되며, 국내외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은 국제 교류를 넘어, 시민의 일상에 스며드는 '참여형 문화전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루피 프로젝트는 그 방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시도다.
이번 협업은 공공이 유머와 감성의 언어로 시민에게 말을 건 사례로 해석된다.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를 들여온 것이 아니라, 공공문화공간이 시민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화공간이 따뜻한 감성과 유쾌한 경험을 품을 때, 관람객과 기관 사이의 거리는 한층 좁아진다는 평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홍보 전략을 넘어, 공공문화의 접근 방식을 바꾸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공공문화공간이 대중 캐릭터를 수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세대 공략이 아니라 문화의 민주화를 뜻한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 경험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루피의 웃음이 시민의 미소로 번지는 순간, 문화는 비로소 공공의 언어가 된다.
ACC 관계자는 "10년 동안 축적한 문화 자산 위에 시민 참여형 콘텐츠를 더해, ACC가 일상 속 전당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ACC의 10주년은 축하의 시간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루피의 모습은 그 변화를 상징한다. 그것은 거대한 풍선이 아니라, 공공이 시민에게 건네는 인사이자 약속이다. 문화가 사람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그 유쾌한 실험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