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줄타기 통해 기술·투자 유치
빅테크 종속 피하며 세계 톱50위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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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아세안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한 베트남의 행보가 단연 주목받는다. 베트남은 미중 어느 한쪽 편에 서기를 거부하면서 양 강대국 모두와 협력하여 기술과 투자를 유치하는 동시에 자국의 AI 생태계를 빠르게 육성하는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마치 바람에 유연하게 휘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는 베트남의 전통적인 '대나무 외교'를 연상시킨다. 최근 베트남은 여기에 '인간 중심'이라는 가치를 더하며 단순히 기술 경쟁을 넘어 AI 거버넌스 논의까지 주도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베트남의 AI 야심은 정부 차원의 강력한 의지에서 출발한다. 베트남 정부는 2021년 발표한 '2030년까지의 연구, 개발 및 인공지능 응용에 관한 국가 전략'을 통해 AI를 국가 핵심 경쟁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30년까지 AI 분야 아세안 4대 강국 및 세계 50위권 진입이 목표다.
최근 베트남 정부는 이 전략의 핵심 철학으로 '인간 중심'을 더했다. 지난달 27일 닌빈성에서 열린 'AI 거버넌스 장관급 원탁회의'에서 응우옌 마잉 훙 과학기술부 장관은 "베트남은 지속 가능한 AI 발전이 강력한 제도·현대적 인프라·인재·인간 중심의 AI 문화라는 네 기둥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선언했다.
베트남의 '대나무 AI' 전략의 핵심은 미중 양 강대국 사이에서의 절묘한 줄타기다. 베트남은 지난 2023년 미국과의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하며 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베트남을 잠재적인 '제2의 거점'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고 현지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AI 연구 및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베트남에 AI 및 클라우드 컴퓨팅 허브 구축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동시에 베트남은 최대 교역국이자 포괄적 전략 협력 동반자인 중국과의 AI 협력도 놓치지 않고 있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의 AI 선도 기업들은 베트남의 전자상거래·핀테크·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베트남 기업들 역시 중국의 방대한 AI 기술과 시장을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양면적 접근은 특정 국가에 대한 기술 종속을 피하면서 최대한의 기술 이전과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려는 실리적인 목표로 이어진다.
베트남의 전략은 단순히 외자 유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부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 자국 내 AI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토종 AI 기업을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빈그룹의 빈AI(VinAI), 국영 통신기업 비엣텔 AI, IT 대기업 FPT 소프트웨어 등은 이미 국제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부 역시 AI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해외 유학파 인재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베트남의 풍부하고 젊은 IT 인력은 AI 시대의 핵심 자산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러한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와 국제적인 인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네스코(UNESCO)가 최근 발표한 'AI 윤리 준비상태 평가(RAM)' 보고서에서 베트남은 아시아 최초로 평가를 완료한 국가 그룹에 포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