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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트럼프 연설 짜집기’ 논란…“공영방송 신뢰에 큰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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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기자

승인 : 2025. 11. 11. 13:40

사장·보도 총책임자 동반 사퇴…트럼프, BBC에 소송 경고
Britain BBC
10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영국 런던의 BBC 방송 본사 앞을 지나가고 있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 편집 논란이 BBC 방송 최고위층의 동반 사퇴로 이어지며, 영국 공영방송의 운영 방식과 보도의 신뢰를 둘러싼 근본적인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번 사태는 BBC의 편집 독립성과 공정성을 넘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는 9일 팀 데이비 사장과 데보라 터네스 뉴스·시사 총책임자가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의 사퇴는 트럼프 대통령 관련 보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트랜스젠더 이슈 등에서 BBC의 편향성을 지적한 내부 보고서가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통해 유출된 직후였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전 자문관 마이클 프레스콧은 BBC 내에 "체계화된 진보 성향의 편집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퇴는 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BBC를 수십 년 만에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특히 공영방송의 재원 구조와 역할을 규정하는 '헌장(차터)' 재검토를 앞두고 터진 이번 사태는 BBC의 향후 존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 문화부 장관이자 보수당 의원인 존 위팅데일은 "BBC의 가장 큰 자산은 국민의 신뢰"라며 "보도가 객관적이고 검증된다는 믿음이 무너지면, BBC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분석가 클레어 엔더스는 "조속히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며 "BBC가 헌장 갱신 과정에서 생존력을 입증하려면, 무엇보다 투명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22년에 창립된 BBC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방송사 중 하나로, 현재 42개 언어로 방송하며 영어권 최대 규모의 뉴스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텔레그래프가 공개한 내부 메모에 따르면, 2024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방영된 BBC 시사 프로그램 '파노라마'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일부를 이어붙여, 그가 2021년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태를 선동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외부 제작사가 맡은 작품이었다.

AFP 통신과 미국 매체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측은 BBC에 보낸 서한에서 오는 14일까지 요구하는 조처를 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약 1조4570억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했다. BBC는 편집이 "판단 착오"였다고 인정했지만, "법적 대응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사태 직후 보도국 내부에서는 즉각 사과문을 발표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BBC 이사회가 이를 막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사회 멤버 로비 깁(전 테리사 메이 총리 대변인)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에 대해 사미르 샤 이사회 의장은 "사과를 막은 적은 없으며, 충분한 논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BBC를 지지하는 측은 이번 사태가 "공영방송을 약화시키려는 정치적·상업적 세력의 조직적 공세"라고 주장한다. 전 BBC 이사회 부의장이자 경제학자인 다이앤 코일은 "이번 위기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흔들려는 외부 세력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언론계 일각에서는 BBC 이사회가 기업·금융계 출신 중심으로 구성돼,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와 편집 판단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앨런 러스브리저 가디언 전 편집장은 "새 사장이 오더라도 이사회가 언론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켜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지금의 구조로는 책임 있는 판단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BBC의 재원 구조를 새로 정비해야 하는 헌장 갱신 시기와 맞물리며, 공영방송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모든 TV 보유 가구가 의무적으로 내는 수신료 제도가 여전히 유효한지, 혹은 다른 재원 모델로 바꿔야 하는지를 검토 중이다.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는 "BBC가 제도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BBC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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