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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빌헬름 2세와 바오미의 ‘황화’ 그리고 ‘2027년 대만침공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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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2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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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서세동점(西勢東漸)기 1895년 독일 빌헬름 2세는 일본의 부상과 중국의 잠재적 역량을 경계하는 '황화(Yellow Peril)'를 거론했다. 1900년 8월 서구열강과 일본 8개국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으로 반(反)황화 연대는 최고조에 달했다. 2025년 '대국굴기(大國屈起)'의 시대에도 미·중 간 충돌 배경에는 반중정서가 있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포 80주년을 앞두고는 '2027년 대만침공설'이 거론되고 있다. 군사전문가의 말처럼 180㎞의 대만해협을 건너 첨단무기와 300만 병력자원의 방어선을 뚫는 침공작전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1958년 금문도 포격전과 중국군의 상륙작전은 실패했고 역(逆)으로 대만의 '물망재거' 본토수복의 염원 역시 정공법으로는 성사되기 힘들 것이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개석 대만총통은 한국전쟁 파병을 통한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으나 미국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손자의 병법처럼 전쟁은 정(正)으로 맞서고 기(奇)로서 승부한다는 것이 거의 모든 전쟁역사다.

'황화(黃禍)'는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를 주도한 반체제인사 중 한 명인 바오미(保密)가 이후 발표한 정치소설이다. 바오미는 중국 내 초대형 자연재해 발생으로 야기된 식량위기와 경제난이 농민과 도시빈민을 폭도화해 빠르게 반정부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제력 격차가 큰 남부 지방성과 베이징 중앙정부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지역 군부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대만과 외국의 개입으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내용이다. 결국 중국의 핵무기 사용으로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가정(假定)이다. 중국의 현안은 경제의 붕괴 가능성과 소수민족의 분리 동향 그리고 대만의 독립정책으로 개관할 수 있다. 중국 전역에서 목격되는 엄중한 보안검색기와 통제장치 그리고 사회주의 표어가 이 같은 불안감을 반영한다.

키신저는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에서 빈 성문 망루에 앉아 여유롭게 부채를 부치고 있는 제갈공명을 거론했다. 적을 기만하고 물러서게 하는 허허실실(虛虛實實) 같은 심리전의 독법이다. 현재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정치경제적 난항을 겪고 있음에도 군사력과 기술력을 홍보하고 국가역량을 과시하는 것은 이러한 내적 고민을 호도하는 허세일 수 있다. 공산당 단일통치의 경직된 체제가 균열의 취약성을 안고 있음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본능으로 역사의 엔트로피(Entropy) 법칙이라 할 수 있다. 대만이 중국과의 인적·물적 교류를 전반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권과 자유의지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일본의 공공연한 지원과 제3의 중국으로 불리는 싱가포르와 한국을 가치동맹의 우방국으로 갖는 역량축적은 대만식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볼 수도 있다. 양안관계에서 베이징의 고민은 오디세우스의 목마와 마주한 트로이(Troy)의 고민과 같을 수 있다. 천안문에서 전차대를 가로막고 2014년과 2019년에는 홍콩 민주화운동에서 공안병력과 대결했던 중국인민들의 강렬한 자유화 열망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내부 충돌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개입은 거의 필연적일 것이다. 유고연방 붕괴로 1999년 발발한 코소보 내전은 유엔과 나토의 인도적 명분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당시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이 나토군의 폭격으로 피격당한 것은 상징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중화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소수민족의 정치적 통일 정책은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과거 티토 대통령이 유고연방 내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포괄하는 '문화적 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를 사상교육을 통해 '정치적 민족주의(Political Nationalism)'로 개조하려던 시도는 내전으로 끝났다. 21세기 과학기술을 소수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중화민족주의에 동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연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앤더슨(B.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분석처럼 중국도 원거리민족주의의 원심력과 구심력 간의 기로에 선 것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수립된 소련은 공산당 장기 독재체제가 74년 만에 막을 내리고 1991년 해체되어 연방국은 15개 독립국가가 되었다.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에는 일본이 수행한 러일전쟁 그리고 시베리아 출병과 유럽에서의 제2전선 공작활동이 상당부분 주효했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고 이후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만으로 축출할 수 있도록 국공합작을 이끌어 낸 것도 일본의 대륙침공이 원인이었다. 소련의 붕괴에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경제난이 주요인이었던 것처럼 대만침공은 중국의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전쟁은 '전시경제특수' 효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전후 '전비정산'과 '배상금' 같은 경제문제로 연계되고 이에 대한 셈법은 관련 국가마다 다를 것이라는 점 역시 주목할 수밖에 없다.

빌헬름 2세 또는 바오미 어느 형태의 '황화'이든 양안관계의 무력 충돌은 문제해결의 정답이 아니며 한반도를 위시로 유라시아 대륙에 잠재된 다수 분쟁의 인계철선을 당기는 인류사적 사건이 될 것임이 명확하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중국과 대만의 안보확보 노력이 오히려 안보를 파괴하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에 빠지지 않도록 선의(bona fide)로서 국제법과 유엔헌장을 준수하는 노력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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