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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 소동극으로 완성한 한국형 코미디, 연극 ‘스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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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2. 23. 09:02

가짜 영매 소동으로 풀어낸 사랑과 이별의 정서
웃음의 형식 위에 쌓아 올린 극단 화담의 정통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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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화담
연말의 대학로는 유독 많은 감정이 스쳐 가는 공간이 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찾기도 하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약속과 송년회 사이에서 극장을 찾는 선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시기에 극단 화담의 창작 코미디 연극 '스카프'가 관객 앞에 선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막해 2026년 새해 초까지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지난 연극제 수상을 통해 검증을 마치고 연말연시 관객을 분명한 타깃으로 삼아 본격적인 막을 올리는 작품이다.

'스카프'는 소동극의 구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창작 코미디다. 사랑하는 전처를 잃은 뒤 슬럼프에 빠진 작가, 돈을 노리고 가짜 영매극을 꾸미는 현재의 아내, 그리고 그 계획에 끌려 들어온 무명 연극배우 경구가 이야기를 이끈다. 상황은 빠르게 전개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연속해서 펼쳐진다. 작품은 분명 코미디의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웃음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는 사랑과 상실, 이별이라는 정서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작품의 주요 설정은 '빙의'다. 연극배우 경구가 가짜 영매 연기를 위해 죽은 전처의 유품인 스카프를 두르는 순간,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가짜로 시작된 사기극은 점차 진짜처럼 보이는 상황으로 번지며, 소동극의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영혼과 빙의라는 소재를 공포가 아닌 코미디의 문법으로 풀어낸다. 웃음을 유발하는 설정이지만, 그 안에는 인물들이 놓인 관계와 감정의 균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스카프'는 단순히 사건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처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가, 현실적인 욕망을 앞세운 현재의 아내, 생계를 위해 어떤 역할이든 감당해야 하는 배우 경구는 서로 다른 욕망과 사정을 안고 있다. 이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상황은 엉뚱하고 유쾌하지만,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웃음 속에 섞인 감정의 결은 작품이 코미디를 넘어서려는 지점이다.

이 작품은 이미 무대 위에서 성과를 입증한 바 있다. '스카프'는 제8회 1번출구연극제에서 남자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특히 전세기 배우의 연기는 작품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로 꼽힌다. 빙의된 상태와 본래의 자아를 오가는 연기는 설정의 기이함을 넘어 무대 위 긴장과 웃음을 만들어낸다. 남자 배우가 구현하는 전처의 존재감은 코미디의 흐름 속에서 작품을 지탱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작 연출을 맡은 박상협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형 정통 코미디'를 표방한다. 그가 말하는 코미디는 단순한 말장난이나 과장된 몸짓에 의존하지 않는다. 상황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와 한국적인 해학, 그리고 인물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웃음을 중심에 둔다. 그동안 사회적 주제와 실험적 형식의 작품을 선보여 온 극단 화담의 작업 흐름 속에서 '스카프'는 코미디라는 장르로의 확장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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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화담
무대 위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인물들을 구현하는 배우는 총 8명에 이른다. '스카프'는 3인극의 구조 위에 다양한 캐스팅 조합을 얹어, 같은 이야기 속에서도 서로 다른 결의 연기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박상협, 전세기, 박호진, 변나라, 이윤경, 정성조, 이태희, 류승주로 구성된 출연진은 각 회차마다 인물의 성격과 리듬을 미묘하게 달리하며, 서로 속고 속이는 소동극의 호흡을 유연하게 변주한다. 좁은 소극장 공간에서 배우들의 대사와 움직임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그 차이는 공연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로 작용한다.

인물은 셋이지만 무대 위 에너지는 결코 단조롭지 않은 이유다. 이 같은 캐스팅 구성은 '스카프'가 연기 자체를 보는 재미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배경이 된다.

연말 관객을 향한 작품의 접근도 분명하다. '스카프'는 연인 관객에게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수 있는 코미디 연극으로, 직장인과 각종 모임 관객에게는 송년회를 대신할 문화적 선택지로 제안된다.

이 작품이 연말 무대와 어울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웃음을 전면에 내세우되, 그 웃음이 가볍게 소비되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돈과 욕망, 사랑과 기억이 뒤엉킨 상황은 유쾌하게 풀리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곱씹을 수 있는 여운을 남긴다. 연말연시,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스카프'는 웃음과 감동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선택지로 자리한다.

웃기기만 한 코미디를 지양하고, 페이소스를 품은 정통 코미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스카프'는 극단 화담의 색깔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연말의 대학로에서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쾌함과 따뜻한 인간미를 함께 품은 코미디 연극 '스카프'는 한 해의 끝에서 관객을 극장으로 이끄는 충분한 이유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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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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