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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에는 지진 당시 총리였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중의원 의원과 아카마 지로(赤間二郎) 방재담당상, 하세 히로시(馳浩) 이시카와현 지사가 참석했다. 하세 지사는 애도사에서 "유족 여러분의 깊은 슬픔과 고난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조여온다"며 "노토의 땅에 온화한 일상과 희망의 빛이 다시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별다른 정치적 발언 없이 헌화만 하고 자리를 지켰다.
와지마 아침시장 폐허에서도 주민 10여 명이 두터운 눈 속에 손을 모았다. 이 시장은 지진 직후 화재로 상점과 주택 등 200동 이상이 소실됐고 주변에서 다수 사망자가 발생했다. 피난처에서 딸을 낳고 돌아온 쿠보 미키(久保美紀·38) 씨는 아사히신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손을 모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주우즈(珠洲)시 경찰관 오마 케이스케(大間圭介·43) 씨는 토사 붕괴로 아내 하루카(38) 씨와 장녀 유카(11), 장남 타이스케(9), 차남 미나토스케(3) 등 가족을 잃은 현장에 백합·장미 꽃다발과 아이들 좋아하던 감자칩·센베이를 가져다 놓고 눈물을 흘렸다. 오마 케이스케씨는 요미우리신문에 "정말 즐거운 추억이 가득했다"며 "올해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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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해 기억 문화는 현장 유구 보존으로 나타난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파괴된 도카이대 아소 캠퍼스 교사는 단층 노출 지반과 함께 '지진 재해 뮤지엄 키오쿠'로 재정비됐고, 구마모토현 내 붕괴 다리·도로 등 58건이 유구로 등록됐다. 노토에서도 절·시장 등 피해 흔적이 복원 과정 속에 남아 있다.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산케이 등 일본 신문과 NHK 방송 주요 언론은 2주년 보도에서 정치 공방이나 책임론 대신 유족 개인사와 지역 일상 회복에 집중했다. 전직 총리 참석에도 정쟁 발언 없었고, 현장은 숙연한 묵념으로 채워졌다. 재난 관련 국가 책임 논의는 별도 방재 제도권에서 이뤄지며 추모 현장은 공동체 중심 복원으로 한정됐다.
이러한 일본의 '조용한 묵념'은 재해를 '국가 책임'으로 직결 짓고 정치 투쟁화하는 한국 정서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노토 지진 2년 추모는 일본 사회가 재난을 집단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방식을 다시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