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현실과 잠재 의식 오가는 기록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한 탐구와 신작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209010003120

글자크기

닫기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2. 09. 12:00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직관에 맡긴 집필과 '잠재 의식'의 세계
투병 이후 '부활' 77세…더 낙관적인 신작과 첫 여성 시점
이단아에서 거장으로...달리며 탐험하는 평범한 '워크홀릭'의 철학
직접 소설가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표지./일본 기노쿠니야(紀伊國屋)서점 홈페이지 캡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노화와 병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잠재 의식(subconsciousness)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77세에 접어든 하루키는 한달 동안의 투병 끝에 '부활(resurrection)'과도 같이 회복해 신작을 완성하며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을 보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 하루키, '잠재 의식의 다른 세계' 걷는 리포터...계획 없는 집필의 미학

무라카미는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지하 칵테일 라운지에서 진행된 NYT 인터뷰에서 창작 과정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소설을 쓸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한다"며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아주 자연스럽고 자동적으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다.

40권이 넘는 책을 쓰고 수천만 권의 판매고를 올린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창작 과정에서 철저히 직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NYT는 인터뷰가 진행된 지하 칵테일 라운지가 동굴과 터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작품 세계와 어울리는 공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오전 10시의 라운지는 거의 비어 있었고, 무라카미는 후드 티셔츠와 운동화를 입은 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신중하게 말했으며 주로 영어로 답했다.

무라카미에게 소설 집필은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는 행위다. 그는 소설을 쓸 때마다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며 그 세계를 잠재 의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했다. NYT는 무라카미가 '또 다른 세계'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그것을 글로 옮긴다고 전했다.

무라카미는 자신을 뛰어난 문체가나 예술가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정확히 말해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본다"며 "천재도 아니고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다"고 했다. 대신 자신의 유일한 기술은 오직 "두 세계 사이를 여행하고, 보고할 수 있는 능력"뿐이라고 했다.

IQ84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소설 'IQ84' 표지./일본 기노쿠니야(紀伊國屋)서점 홈페이지 캡처
◇ 투병 끝에 일어선 '부활'...여성 '카호'의 눈으로 쓴 첫 소설

무라카미는 77세의 나이에 한 달간 입원할 정도의 심각한 질병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체중이 40파운드(약 18kg)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 한 시간씩 달리기를 했는데,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 경험이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병이 심할 때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회복 후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무라카미는 병상에서 일어나 새 소설을 집필한 것을 '일종의 부활'이라며 "돌아왔다(I came back)"고 했다. 이 투병 끝에 탄생한 신작 소설은 이전보다 더 낙관적이며, 특히 생애 처음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집필된 첫 소설이라고 했다.

그는 주인공인 젊은 여성 '카호'에 대해 아주 평범한 소녀이지만, 많은 이상한 일들이 그녀 주변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새 소설의 세부 줄거리에 관해서 비밀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NYT는 무라카미의 소설이 일상적인 장면에서 출발해 꿈같은 평행 현실로 이동하지만, 판타지라기보다는 세밀한 일상에 뿌리를 둔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노르웨이의숲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소설 '노르웨이의 숲' 표지./일본 기노쿠니야(紀伊國屋)서점 홈페이지 캡처
◇ 일본 문단의 '검은 양', 세계 문학의 주류가 되다

NYT는 한때 일본 문단에서 '가벼운 작가'로 평가받던 무라카미가 이제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소설가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집필 초기 서구 문학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이유로 일본 비평가들로부터 '일종의 검은 양' 취급을 받았다. 비평가들은 그의 초현실적인 플롯과 간결한 문체를 비판했고, 그는 이러한 비판을 피해 수년간 미국과 유럽을 떠돌아야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들은 문학에 '주류 도로'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도로 위에 있지 않다고 여겼다. 일종의 '사이드 쇼(side show·비주류의 구경거리)'였던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세계적 위상이 독보적으로 높아진 지금, 일본 문단 내 분위기도 바뀌었다. 하루키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사람들은 노인을 존경한다"며 이제 더 이상 일본에서도 국외자처럼 느끼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상과 예루살렘상을 받았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미국에서만 600만부 이상 판매된 그의 저력은 신작 출간일 자정 판매 행사와 독자들이 만드는 요리책 등으로 증명되고 있다.

하루키 번역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쓴 '번역, 거의 모든 일' 표지./일본 기노쿠니야(紀伊國屋)서점 홈페이지 캡처
◇ 달리기·번역·집필의 일상..."여전히 탐험할 공간 남아"

NYT는 무라카미가 공개 석상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고 TV 출연을 피하지만,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두 차례 공개 연설을 했다고 전했다. 무라카미는 12월 11일 타운홀 행사에서 일본 문학과 문화의 세계화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주 '센터 포 픽션(Center for Fiction)'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50년 넘게 함께한 아내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녀가 자신의 "첫 번째 독자이자 가장 엄격한 편집자"라고 했다.

무라카미는 "사교가 서툴고 파티나 연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은 해야 한다"며 자신이 1년 중 대부분을 집에서 작업에 몰두하며 지내는 '일 중독자(workaholic)'라고 했다. 그는 글쓰기에 지루함을 느낄 때 번역 작업으로 돌아서서 뇌를 기민하게 유지한다며 이를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본다"고 표현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일본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부모가 이를 가르치셨기에 싫어했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음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으며 특히 재즈와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자신의 문학적 리듬을 형성했다고 믿으며, 규칙적인 달리기와 집안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창작 에너지를 보존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무라카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소설을 쓰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며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탐험할 공간은 남아 있다"고 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