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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지난해 말부터는 충돌 일보직전에까지 이르게 됐다. 당연히 시 주석이 권력에서는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장 부주석이 가만히 있을 경우 숙청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로서는 뭔가 반전의 전기를 마련해야 했다. 방법은 쿠데타, 즉 반란 외에는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군 고위 장성들을 규합, 거사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D-데이를 결정할 날도 정해졌다. 1월 19일이었다. 반란 모의 장소 역시 베이징 근교의 비밀스런 모처로 확정됐다. 그는 당일 아침 일찌감치 베이징 시산(西山) 자택을 나와 자신의 아우디에 올랐다. 하지만 모의 장소로 향하던 도중에 미리 정보를 입수한 후 기다리던 인민해방군 보안부대 정예 요원들에게 전격 체포되는 횡액을 당했다.
그의 아들과 부인 역시 시산의 자택에서 체포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반란 모의 장소인 베이징 모처로 향하던 류전리(劉振立·62) 중앙군사위 위원 겸 합동참모부 참모장을 비롯한 다수의 고위 장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반란 모의 수장인 장 부주석과 똑 같은 신세가 됐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장 부주석보다는 3살 어린 시 주석은 평소 깍뜻하게 대한 선배와 고위 장성들이 체포되는 이 모든 과정을 리얼타임으로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황이 종료된 직후에는 영상을 통해 체포작전 전 과정도 시청했다고 한다.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종료된 지 1주일 만에 국방부를 통해 전모를 급거 발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장 부주석의 낙마와 관련해서는 무수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부패 연루설과 미국에 핵무기 관련 기밀을 팔아넘긴 간첩이라는 소문들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반란을 모의했다는 소문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가장 유력한 설이라고 해도 괜찮다.
만약 반란 모의설이 사실일 경우 직, 간접적으로 연루된 장군들 역시 무사하기 어렵다고 해야 한다. 벌써부터 숙청 대상들이 거명되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3월 초 열릴 제14기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약칭 전인대와 정협) 4차 회의에서 인민해방군의 대대적 개편이 논의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것은 이로 보면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