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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군 생활 접고 中 정착… 조선중고등학교도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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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은 기자

승인 : 2026. 02. 23. 17:48

정몽주 24대 종손 정철수 선생은
1984년 40년 만에 극적 모자상봉
1986년 가족과 韓으로 영구 귀국
영일 정씨 포은(정몽주)공파 종손 정래정 선생과 일가. /정재훈 기자
엄혹한 일제강점기 시대, 한반도 안팎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던 독립군 가운데 고려말 지조와 충절의 상징인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의 후손이 있었다. 바로 중국에서 조선의용군-조선독립연맹 소속으로 활동한 정몽주 선생의 24대 종손 정철수 선생이다.

쇠퇴해 가던 고려에 대한 충심을 끝까지 지켜냈던 포은 선생처럼, 정철수 선생 역시 한일합병 후에도 일제에 맞서 독립군 활동을 벌였다. 정 선생은 1942년 말 학도병 징집을 당해 중국 전선에 끌려갔다가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에서 탈출해 태항산(太行山)에서 조선의용군 소속으로 중국 팔로군과 연대해 만주에 파병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는 자신의 활동으로 고국에 남은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당시 팔로군 상사의 이름을 따라 '고철'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이렇듯 불의에 항거하며 때로는 직접 무기를 들고 싸운 정 선생이지만, 그 바탕에는 사람이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인본주의적 관념이 깔려 있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남은 일본 포로들을 모두 처단해야 한다는 소련과 중국 측에 맞서 전쟁범만을 재판에 넘기고 남은 가족 등은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3개월간의 교섭 과정에서 소련과 중국 측을 설득해 350여 명의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해방 후에는 군 생활을 접고 중국에 머물렀다. 중국에서 팔로군과 연대해 독립군 활동을 했던 만큼 북한으로 들어갈 기회는 있었으나, 고국에서 벌어지는 동족 간의 싸움에 참가할 수는 없다는 그의 의지는 굳건했다. 이후 길림시와 연길시 등에서 교육과 문학 활동에 집중했다. 정 선생은 1949년 길림시에서 공립 길림조선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 또 1958년에는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편집부장을 맡기도 했다.

정 선생은 중국에서 터전을 잡는 듯했으나, 말년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온다. 한국에 남아 있던 정 선생의 어머니가 그를 찾기 위해 1983년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다. 여전히 '고철'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던 정 선생이었지만, 그의 개명 사실을 아는 지인들이 사연을 듣고서는 정 선생의 이야기라는 것을 직감해 이야기를 전했다. 정 선생은 이듬해인 1984년 홀로 한국으로 건너가 4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난다. 이후 1986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고, 3년 후인 1989년 6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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