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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엽의 법과 경제] 트럼프의 ‘법률 갈아끼우기’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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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24. 17:42

지인엽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 연방대법원이 약 5개월의 심리 끝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관세 정책의 법적 근거로 내세웠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판결 직후 곧바로 다른 법적 근거를 내세운 대체 관세를 예고했다. 그는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새로운 10% 글로벌 관세를 발표했고 이후 15%로 상향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다. 국제무역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패소 이후 활용할 카드로 무역법 122조와 301조, 관세법 338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거론해 왔다. 그중 트럼프가 즉각 꺼내든 무역법 122조는 국제수지에 문제가 생길 경우 대통령에게 임시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트럼프가 활용해 온 국제비상경제권한법에 가장 가까운 대안으로 보인다.

다만 122조의 역사적 맥락을 보면 트럼프가 얼마나 수세에 몰렸는지도 드러난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주도로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국제금융질서를 만들기 위해 미국 브레튼우즈에서 44개국이 참가한 국제통화협정이 체결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도 이때 설립되었다. '브레튼우즈체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고 달러-금 가격을 고정한 고정환율제도였다. 요컨대 국제거래는 달러로 이루어지고, 달러를 가져오면 미국이 금으로 바꿔주는 구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전쟁 피해국이던 프랑스, 서독 등 유럽 국가들의 경제력이 회복되면서 달러 보유고가 급증했고, 1960년대 베트남전과 해외 원조 등으로 미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되자 달러 가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은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구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무역 상대국들과의 협의 없이 수입 제한과 관세를 부과하고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금태환 중단'을 선언하여 브레튼우즈체제는 사실상 종식됐다.

무역법 122조는 이런 일방적 조치 이후 대통령이 국제수지 위기를 구실로 관세와 수입 제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제어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비상 조문이다. 지금까지 실제로 발동된 적도 없다. 그런데 평소 급진적 경제정책의 유사성 때문에 닉슨과 자주 비교되는 트럼프가 역설적으로 닉슨의 결정이 낳은 이 법을 꺼내 드는 기이한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어쨌든 122조에 따른 관세는 150일 한시적으로만 부과된다. 이후 연장하려면 의회의 입법이 필요하지만, 과거와 달리 의회에서 트럼프 지지가 공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장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게다가 관세율에는 15% 상한이 있고, 국가별로 비차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므로 국가별·품목별로 복잡하게 차등화된 '트럼프식 관세체계'를 그대로 복제하기도 어렵다. 트럼프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122조는 다른 법적 수단을 준비하는 동안의 '시간 벌기용'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122조가 무용해질 때를 대비해 후속 법률로 무역법 301조가 거론되고 있다. 다만 301조를 발동하려면 상대국이 국제무역협약상 미국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고, 이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조사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2018년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중국을 상대로 발동된 전례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트럼프가 소송에 패한 직후 대안으로 301조를 꺼내는 형국이어서, 법원은 이를 '패소 우회' 시도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 후보로는 관세법 338조가 있다. 이 법은 상대국이 미국산 상품을 차별할 경우 보복관세를 허용한다. 문제는 이 법이 약 100년 전 대공황기에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스무트-홀리 법 체제의 역사적 산물이며 국가 간 차별무역이 광범위하던 시대의 유산에 가깝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 질서가 자리 잡으면서 관세의 법적 근거로 발동된 적은 사실상 없다. 오늘날 1930년대처럼 국가 간 보복관세가 광범위하게 성행하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포괄적 관세 장벽을 세우는 데 실익이 크지 않다.

마지막으로 트럼프가 관세정책을 국가안보와 연결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할 가능성도 있다. 232조는 미국 통상당국과 교역상대국 모두에게 익숙한 수단이며, 실제로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입 규제를 가할 수 있고 여러 품목에 적용된 사례가 축적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포괄적 관세용으로는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고, 지금 단계에서 소송이 발생할 경우 법원이 이를 우회 전략으로 볼 위험이 크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관세정책의 법적 기반이 이전보다 협소해진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번 판결은 트럼프 경제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기보다, 삼권분립원칙에 입각해 비상권한의 남용 가능성에 제동을 건 결정에 가깝다. 따라서 트럼프가 남은 법률들을 무리하게 확장 적용할수록 오히려 사건이 다발화하고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판결이 위험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위험의 형태를 바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남은 법률들 아래에서 소송과 행정절차가 난립하면 미국 시장 접근의 불확실성은 개선되지 않고 악화될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체감하는 리스크는 관세의 존재 여부보다, "어떤 조항을 근거로 어떤 절차를 통해 언제 발동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관세율이 아니라, 법적 리스크의 재배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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