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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대법관 증원’과 ‘독재’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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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승인 : 2026. 03. 04. 18:30

'대법관 증원법' 본회의 통과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법관 증원법)이 찬성 173인, 반대 73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 있습니다. 바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입니다. 그는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경제 비상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뉴딜'을 내세우며 각종 경제법안을 밀어붙였습니다. 의회 역시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없이 순조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곧 암초에 직면했습니다. 보수적 성향의 연방대법원의 반대였습니다. 뉴딜 정책의 핵심 법안들이 대법원의 위헌 판단으로 줄줄이 제동이 걸렸습니다. 1936년, 61%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는 곧바로 대법원을 겨눴습니다. 종신직인 대법관의 나이가 70세 6개월을 넘으면 대통령이 추가로 한명씩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대법관 증원안을 추진한 겁니다. 당시에 이미 70세가 넘은 대법관이 6명이었으니 기존 9명이던 대법관은 15명까지 늘릴 수 있는 셈입니다. 억지로 쑤셔 넣는다는 뜻의 이른바 '코트 패킹(Court Packing)'이었습니다.

반발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도 쏟아졌습니다.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것입니다. 루스벨트의 러닝메이트였던 존 가너 부통령조차도 등을 돌렸습니다. 사법부를 대통령 마음대로 바꾸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집권 여당의 용기있는 반대였습니다. 법안은 표결 없이 철회됐습니다.

사법부를 겨냥했던 또 다른 지도자가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입니다. 그는 집권 후 대법관 수를 대폭 늘려 정권에 우호적인 인사를 대거 임명했습니다. 노골적인 '코드 인사'였습니다.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하자 사법부는 정권에 대한 통제권한을 상실했습니다. 결과는 '국가 파탄'이었습니다.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대통령의 공포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법안이 공포되면 14명이던 대법관은 26명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증원되는 대법관 12명은 물론이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해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 10명에 대한 후임 임명권도 가집니다. 임기 중에 26명 대법관 가운데 무려 22명을 임명할 수 있게 됩니다. 한 정부가 대법원 구성을 압도적으로 좌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법관 증원은 단순한 '숫자 늘리기'가 아닙니다. 차베스 대통령은 측근들을 대법관에 임명한 후 집권 기간 정부에 반대하는 대법원 판결을 '0'건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법부가 입법·행정부의 보호 장치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가 재편한 독재 정권 구조는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 아래에서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루스벨트 대통령조차도 대법원 장악 시도는 유일한 '흑역사'로 남았습니다. 사법부를 손에 쥐려 한 정권의 결과는 이미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건드려 '삼권분립'이라는 국가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순간 어떤 지도자라도 '독재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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