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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 사유의 미학…김상유 ‘대산루’로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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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4. 23. 14:04

서울미술관서 100주년 회고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대산루, 1990, 개인소장
김상유의 1990년작 '대산루'. /서울미술관
명상에 잠긴 한 인물이 누각에 앉아 있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시간마저 멈춘 듯한 이 장면은 김상유 예술 세계를 상징하는 '대산루' 연작이다. 경북 상주의 누각을 바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인물을 담아낸 이 작품에서 화면 속 존재는 작가 자신이자 우리 모두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이 연작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소장 사실을 공개하며 대중적으로 재조명된 바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상유(1926~2002)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은 이 '대산루'를 비롯한 대표작을 통해 작가의 반세기 작업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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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유(1926~2002)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경. /서울미술관
김상유는 한국 최초로 동판화를 시도하며 현대 판화의 길을 연 선구자다. 국수 기계를 개조해 프레스를 만들고 아연판과 공업용 산을 활용하는 등 스스로 제작 환경을 구축하며 독자적인 작업 방식을 확립했다.

총 6개 장으로 구성된 전시는 동판화, 목판화, 유화에 이르는 작업의 변화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또 판화 원판과 제작 도구, 아카이브 자료 등을 함께 소개해 한 작가의 삶과 작업 과정을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1970년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작 '막혀버린 출구'는 김상유의 초기 세계를 대표한다. 검은 화면 위 사각형과 그 안에 누운 인물 형상은 관을 연상시키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단순한 구성 속에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응축돼 있다.

이후 김상유는 목판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한국적 정서를 탐구한다. 나무를 직접 깎고 한지에 먹을 올린 뒤 숟가락으로 문질러 이미지를 찍어내는 방식은 노동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시력 저하와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작업을 이어간 그는 결국 칼을 내려놓고 붓을 들어 유화로 나아간다.

컬러 목판화 01, 1970년대
김상유의 1970년대 컬러 목판화. /서울미술관
유화 작업에서도 판화적 감각은 유지된다. 윤곽선을 그리고 색을 채운 뒤 다시 덜어내는 방식으로 물성을 줄인 담백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 등장하는 '명상하는 인물'은 반복되는 도상으로 자리 잡으며 작가의 내면을 상징한다.

말년에 이르면 화면은 더욱 비워진다. '청산록수'에서는 인물과 자연만이 남는다. 옷과 배경은 사라지고 산과 해, 인간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며 '무위자연'의 경지를 드러낸다.

1960년대, 동판화에 매진하던 시절
1960년대, 동판화에 매진하던 시절 김상유 작가의 모습. /서울미술관
대규모 회고전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이자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회장의 오랜 수집이 있다. 안 회장은 2002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김상유전'을 계기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매료돼 당시 전시된 유화 대부분을 사들였고 이후 꾸준한 수집으로 100점이 넘는 컬렉션을 구축했다. 그는 "김상유라는 작가를 세상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작품을 모두 구입했다"며 "묻혀 있던 작가를 양지로 끌어내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마땅한 평가를 받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상유의 차녀인 김삼봉 김상유문화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아버지는 은둔과 고립, 고독의 작가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혼자 하는 즐거움과 여행의 맛을 알고 매일 자기 수양을 위해 깊은 명상을 즐기셨던 분"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잊힐 수 있던 아버지의 예술 세계를 되짚는 자리가 마련돼 감사하다"고 전했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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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유(1926~2002)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경. /서울미술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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