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손수연의 오페라산책]서울시오페라단 ‘나부코’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413010003954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6. 04. 13. 16:48

베르디 초기 음악적 실험을 잘 재현한 무대
[세종문화회관] 나부코_ A팀18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나부코'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작곡가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을 시기에 탄생한 오페라 '나부코(Nabucco)'를 두고, 베르디는 '내 음악 인생은 '나부코'로 시작해서 '나부코'로 끝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나부코'의 대성공으로 인해 정상급 오페라 작곡가로 올라섰고, 그의 장례미사가 치러진 밀라노 대성당에서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으니 그 예언은 들어맞은 셈이다.

장서문의 연출과 김현정의 무대, 변미라의 의상디자인은 일관된 색조와 콘셉트로 통일된 무대를 보여줬다. '나부코' 고유의 시대적 배경과 설정을 그대로 살려 전통적 오페라를 선보였는데 무대의 구도나 인물의 배치, 색감 등이 마치 바이블 에픽(Biblical epic)이라 불리는 1950년대 할리우드의 초대형 성경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무대장치, 대규모 인원, 무용수를 활용한 스펙타클한 연출이 '쿼바디스'나 '벤허'와 같은 영화를 연상케 했다.

[세종문화회관] 나부코_ A팀20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나부코'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특히 1막 나부코와 바빌로니아 군대의 예루살렘 성전 침략 장면에서 무용수와 연기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장서문의 직관적인 연출 의도와 어울려 강렬한 효과를 냈다. 무대 천장의 조형물이나 나부코의 커다란 왕좌는 상징적이었지만 이 또한 극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성격에 적절하게 사용됨으로써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도구로 쓰였다.

이날 관객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악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위너오페라단과 시민오페라단이 함께 완성했다. 위너오페라단은 힘 있고 안정감 있는 음색으로 합창 위주인 이 오페라를 잘 이끌었다. 우리나라 민영 오페라 합창단의 경우, 상대적으로 젊은 소리만 들려 극적 몰입을 해치는 경우가 빈번한데 이날 합창은 다채롭고 풍부한 빛깔로 연주돼 작품의 특성을 매우 잘 살렸다고 할 수 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서는 시민합창단이 불빛을 들고 어두운 1층 객석을 지나갔는데, 합창단의 수준 높은 연주력과 작은 불빛, 의상이 주는 조화가 뛰어나 큰 감동을 주었다.

이든 지휘자가 이끄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작품을 주도하는 합창과 좋은 조화를 이뤘다. 오페라가 갖는 음악의 직선적 성격과 강력한 다이내믹도 잘 표현했다. 이든 지휘자는 섬세한 프랑스 음악보다는 빠른 도약과 격한 리듬을 동반하는 베르디 오페라에 더욱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선율보다 리듬이 오페라를 이끄는 베르디 초기의 음악적 특징을 잘 살렸으나 4막에서는 탄력이 조금 떨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종문화회관] 나부코_ A팀09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나부코'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이날 타이틀롤인 나부코 역을 노래한 바리톤 양준모는 기대한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건조한 음색이 들리는 등 컨디션이 좋지는 않은 듯했다. 막강한 권위를 가진 1막과 그것이 붕괴하는 2, 3막을 지나 다시 회개와 권력을 되찾는 4막까지 이르는 인물의 여정을 다소 단조롭게 표현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에 반해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던 아비가일레 역의 소프라노 서선영은 작품 안에서 가장 복잡하고 극단적인 인물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날카롭게 노래한 고음부에 비해 저음부는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빠른 패시지 처리와 자연스러운 음의 도약 등 인물의 욕망과 불안, 광기를 잘 표현했다. 특히 4막 아비가일레의 죽음은 숭고한 느낌마저 전달했는데 어떤 배역을 노래하든 자신의 오페라로 만들어 내는 서선영의 강점이 다시금 발휘된 대목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나부코_ A팀26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나부코'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이날 주목할 만한 또 한 명의 성악가로 이스마엘레 역의 테너 이승묵을 꼽고 싶다. 오랫동안 한국 오페라의 대표적인 남자 주역으로 활동해 온 그는 이번 무대에서 안정된 발성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작품 전체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특기라 할 수 있는 예리하게 뻗어나가는 음색이 한층 부드러워져 주변과 조화를 이뤘으며, 강약을 조절하는 유연한 가창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약 10년간 나타날 베르디 애국주의 오페라의 서막이자, 1842년 초연된 이 성서 오페라가 220년 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먼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전쟁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박해받는 민족으로 그려진 유대인들이 이제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지금의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